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이 ‘질 좋은 성장’을 기치로 한 신산업 정책을 제시했다. 성장을 회복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분배를 개선시키는 것이 신산업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설명이다. 신산업 정책의 골간은 3대 전략, 9대 과제로 요약된다. 3대 전략이란 고용 있는 성장, 균형 있는 성장, 혁신 주도 성장을 말한다. 9대 과제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투자 활성화, 일자리 창출 효과 평가시스템 구축, 신성장 동력의 조기 산업화, 부품·소재 중핵기업 발전, 혁신형 중소·중견기업 육성 등이다.
정 장관이 취임 후 50일 동안 준비해 발표한 신산업 정책이기에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평가를 해본다면 기대반 우려반 수준이다. 기대되는 것은 지난 2000년 이후 산자부가 추진해온 산업체질 고도화라는 정책기조를 대부분 수용했다는 점이다. 부품·소재산업과 혁신형 중소·중견기업 육성, 신성장 동력 발굴 강화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정책은 핵심기술에서는 일본, 조립에서는 중국에 밀려나고 있는 우리나라 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됐으며 반드시 결실을 거두어야 하는 것으로 최우선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정 장관은 이번에 미래시장 선점형 50대 핵심 소재기술 확보를 위해 별도 기술개발 프로그램 신설과 개발된 신기술의 사업화에도 지원을 확대키로 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특히 부품·소재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M&A 활성화 기반을 마련하고 대기업 진출에 걸림돌이 돼온 출자총액제한제 예외 인정을 확대하기로 하는 등 획기적인 발상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동안 투자금액과 기술개발 성공으로 평가해왔던 지원 기준이 미흡하다며 앞으로 주요 정책의 효과 및 지원 기준을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재점검하겠다고 강조한 점은 매우 걱정스럽다. 물론 기업들의 투자 기피로 일자리가 줄어들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산업정책 근간을 일자리 창출에 맞추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일자리 부족은 투자위축이 가장 큰 요인이기는 하지만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산업구조 고도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IMF 이후 우리나라 산업정책 기조는 첨단기술 위주의 고부가가치화다. 부품·소재산업과 혁신형 중소·중견기업 육성, 신성장 동력 조기 발굴이 여기에 바탕을 둔 정책이다. 이미 지금도 첨단산업에서는 고용 없는 성장이 나타나고 있다. 산업정책 수장으로서 사회 현안인 일자리 창출에 부담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근본정책에까지 어울리지 않는 일자리 창출을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될 일이다.
신산업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산업구조 고도화지 일자리 창출이 아니다. 일자리 창출 잣대는 투자 활성화나 외국인 투자 유치, 서비스 산업 육성, 균형 성장 등에서 찾아야지 산업구조 고도화 분야에까지 들이밀어서는 곤란하다. 만약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준 때문에 경쟁력 있는 고도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고 일자리 위주의 저부가가치 산업에 예산이 편중된다면 그동안 추진해온 산업체질 개선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정 장관이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은 거시적인 장밋빛 시나리오보다는 산업 현장의 각종 애로사항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해법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출자총액 제한, 금융권의 기술담보 신용대출, 기술사업화, 5년 만기의 투자조합 문제 등은 수년간 구호만 요란했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산자부 혁신 연찬회에서는 “산자부는 정책 일관성과 연속성을 따지기보다는 유행에 민감한 정책을 만드는 데 너무 치중한다”는 자아비판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정 장관이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할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