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는 10여년 전에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던 전자주민증 제도를 다시 도입하고자 기업들 중심의 한국조폐공사 컨소시엄에 전자주민증 발전모델에 대한 연구를 수행케 했다.
이미 두 차례 공청회를 열었고 여기서 나온 제안을 반영한 최종안을 4월까지 확정, 이후 법제화를 거쳐 98년부터 전자주민증 발급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전자주민증 도입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자주민증 도입제도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과 취약점이 있다. 첫째, 개인정보 유출 및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다. IC칩에 개인정보가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된 전자주민증은 리더(reader)를 가진 기관에 개인정보가 노출되고, 중앙 행정관리 서버 해킹이나 보안관리자의 고의 또는 부주의로 정보 유출 시 개인정보가 무제한 복제되고 확산된다. 또 전자주민증으로 제공되는 서비스가 확장될수록 더욱 많은 개인정보가 행정 중앙서버에서 관리되고 개인 활동이 노출될 수 있어 사생활이 침해될 위험이 커진다.
둘째, 전자주민증 현재 안이 도입되면 컴퓨터 접속 단말기를 구비하지 못할 경우 본인도 온라인 인증 접속이 어렵게 된다. 더욱이 전자주민증 분실 시 본인의 신분 확인이 안 되고 온라인 접속이 불가능해져 생활에 막대한 불편을 초래하게 된다.
셋째, 전자주민증 도입 추진체와 공청회의 공공성 및 신뢰성이 미흡하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전자주민증제도가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추진체가 아니라 IC업계와 관련된 기관과 기업 중심의 컨소시엄에 의해 진행되고 있고, 도입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연구와 공청회도 이 컨소시엄과 관련 기관 및 관학자가 함께 주도하는 등 공공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전자주민증이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고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전자주민증 도입의 방향과 로드맵을 국민적 공익성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는 주체가 결성돼 전자주민증 도입 추진을 총괄하도록 해야 한다. 다양한 계층의 국민 의견을 대변하는 대표성을 갖춘 인물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총괄토록 함으로써 신뢰성과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전자주민증 도입을 위한 추진 절차와 시기를 재조정해야 한다. 국민 요구를 파악, 도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개인정보와 사생활의 철저한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를 구비한 후에 단계별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전자주민증의 핵심인 본인 신분확인 및 위·변조가 불가능한 기술 등이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전자도입증 도입 시기를 재조정해야 한다.
셋째, 전자주민증 형태 및 수록되는 개인정보와 기능을 국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전자주민증을 통한 서비스 활용 시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국민이 별도 접속 단말기를 구입할 필요없이 기존 디스크 드라이브나 CD 드라이브에서 인식될 수 있도록 하는 등 불편함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 만약 전자주민증을 분실했을 때 본인 신고를 통해 전자주민증 사용이 즉시 중지되고 온라인 인증 필요 시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자주민증을 사업자의 비즈니스적 필요에 따라 무리하게 도입하기보다는 국민의 요구를 기반으로 공감대를 얻고 향후 기술발전 추세를 감안하며 추진해야 한다. 유비쿼터스 사회의 근간이 되는 국민의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보호하고 생활의 편리성을 높일 수 있도록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한 추진체를 결성해 전자주민증 도입 방법과 절차 및 일정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안종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daniel@ha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