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눈물젖은 김치

한세희

 최근 며칠 사이 반도체·LCD 공정 핵심부품인 진공펌프 관련 기사가 잇따라 지면을 장식했다.

케이씨텍과 일본 가시야마 합작사인 케이케이테크의 설립 소식, 알카텔진공코리아의 공장 신축 발표 등의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 진공펌프 분야의 터줏대감인 성원에드워드가 합작사인 영국 BOC에드워드의 생산 라인을 국내로 이관한다는 소식도 있다.

 이들 뉴스의 공통점은 굴지의 다국적 기업이 해외에서 주로 생산하던 진공펌프의 국내생산 비중을 높일뿐 아니라 한국을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진공펌프의 세계 생산기지로 만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는 점이다. 이는 물론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이 급성장한 결과다. 국내 업체의 필요에 대응하는 것이 이들 기업의 가장 큰 과제가 된 것이다. 기술적으로도 점점 더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는 ‘깐깐한 고객’인 국내 업체를 공략한다면 세계 어디서든 통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김중조 성원에드워드 회장의 ‘김치 이야기’가 생각난다. 김 회장은 얼마 전 김치 한 보따리를 들고 영국 출장길에 올랐다. 영국에서 BOC에드워드와 진공펌프 라인 인수작업을 벌이던 직원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1998년에도 김치를 들고 영국 출장을 떠난 적이 있다. 그때도 현지에 파견 된 한국 직원들 격려 차였다. 당시는 IMF 직격탄으로 다들 어렵던 시기. 성원에드워드도 직원 몇명을 영국으로 보냈다. 일이 별로 없는 국내에 두느니, 원화 약세로 적은 비용에 여러 명의 한국 직원을 쓸 수 있는 본사로 보낸 것이다.

 같은 사람이 같은 김치를 들고 오른 영국행이었지만 감회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10년이 안 되는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 한국은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 최고의 시장이다. 이 바닥에서 ‘한국’ 출신이라는 점은 세계에 통하는 프리미엄이다. 진공펌프 분야는 한 예일 뿐이다. 물론 오늘날의 이런 모습은 관련 업계 및 연구계의 수많은 사람이 눈물 젖은 김치를 먹으며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세계의 경탄과 동시에 견제의 대상이 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 김치의 매운 맛을 계속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디지털산업부·한세희기자@전자신문, 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