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보조금 제도가 시행된 지 보름여 만에 이동통신사들이 경쟁적으로 보조금을 인상하고 있다. 물론 합법적인 인상이다. 하지만 과거의 예를 볼 때 이러다간 이통사 간 보조금 경쟁이 과열돼 자칫 시장질서를 혼탁하게 하는 불씨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지난 주 KTF가 전격적으로 합법적인 보조금을 인상한 지 하루 만에 LG텔레콤도 인상을 결정했다. SK텔레콤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두 업체는 이번 조치를 두고 합법적인 보조금 강화를 통해 불법 보조금 시장 근절을 유도하고, 기여도에 따른 혜택차등 적용 등 제도의 취지를 살려 고가치 고객에 대한 혜택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가입자 경쟁이 치열한 이동통신 시장에서 그동안 소홀했던 전략적 가입자층을 지키고 우량 고객을 유치하겠다는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조치에 대해 이미 가입한 사람은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단말기 보조금은 2년에 한 번뿐이어서 이미 받은 가입자는 추가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관망세라고 한다. 후속 조치를 지켜본 후 가입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번 보조금 인상을 계기로 이동통신 3사 간 가입자 쟁탈전이 본격화됐다는 점이다.
KTF와 LG텔레콤의 이번 보조금 인상 결정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은 이동통신 시장이 합법적인 보조금 경쟁구도로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긍정적인 면이다. 정보통신부와 통신위원회도 KTF와 LG텔레콤의 보조금 인상 결정이 정책 취지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내렸다. 합법적인 보조금 인상으로 인해 불법 보조금을 쓸 수 있는 여력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사업자가 보조금 액수를 자율적으로 판단해 합법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전기통신사업법의 입법 취지에도 맞는 일이다. 이동통신사들의 마케팅 비용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합법 보조금으로 장기 가입자에 대한 혜택을 확대한다면 불법 보조금 지급 여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결국 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그 반대도 가능하다. 자칫하면 이동통신사 간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 KTF와 LG텔레콤이 보조금 인상을 결정한 가장 큰 요인은 자사 가입자 감소다. 만약 가입자가 늘고 있다면 구태여 추가로 보조금을 확대할 이유가 없다. 이번 조치를 보는 시각이 다소 불안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단말기 보조금 속성상 한 사업자가 올리면 다른 사업자도 그대로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동안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오간 이동통신사들이 과연 얼마나 합법적으로 공정경쟁을 벌일지가 변수라고 하겠다. 만약 가입자를 더 늘리기 위해 불법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일이 발생하면 시장질서를 혼탁하게 하는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보조금은 더 들어가고 시장은 과거처럼 다시 어지러워지고 만다. 따라서 이동통신사는 합법적인 보조금 지급 규정을 준수하면서 클린마케팅을 해야 할 것이다. 만의 하나 과거로 회귀한다면 다시 정부 규제를 자초할 수 있지만 이동통신사들이 준법을 실천한다면 굳이 단말기 규제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동통신사가 고객 선호에 맞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에 따라 가격을 차별화한다면 단말기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차별화·특화한 서비스로 고객을 유치하지 않고 단순히 보조금 인상만으로 경쟁한다면 서로 발목을 잡는 일이 될 것이다. 경쟁사보다 질 좋고 다양한 맞춤 서비스, 차별화된 요금 등을 제공하는 소비자 감동의 경쟁을 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