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젠 프리보드 활성화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장외시장인 프리보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드높다. 정부가 벤처자금을 선순환시키는 장으로 육성하겠다며 제3시장을 개편해 지난해 7월 재출범시킨 프리보드는 당초 목표가 무색할 정도로 거래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프리보드는 개장 8개월째인 지난 3월까지 지정업체 수가 57개에 불과하고 종목 수도 61개에 그쳤다. 시가총액이라고 해야 약 4500억원으로 이 금액은 잘 나가는 거래소나 코소닥 종목의 개인주주 시가총액 규모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도로는 비상장기업이 간접금융에 매달리지 않고 프리보드를 통해 직접 자금을 조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간접금융에 취약한 중소·벤처기업의 불만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세제 개선과 매매방식 변경 등 특단의 대책에 따른 프리보드 활성화가 시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금융감독당국은 시장 안정화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며 활성화 시책에는 소극적이다. 국회금융정책연구회와 한국증권업협회가 엊그제 개최한 프리보드 발전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제도변경 이전에 유망기업 유치 등이 선행돼야 한다”며 선 시장 안정화를 재차 강조했다. 물론 금융감독당국의 태도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중소 벤처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는 코스닥시장에서조차 갖가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직도 내부자 거래나 주가조작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고 작전성이 의심스러운 우회등록도 성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스닥 상장기업의 절반이 상장요건에도 못 미칠 정도로 부실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코스닥도 이러한 데 투자자 보호가 최우선인 금융당국으로선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조치도 없는 프리보드 활성화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코스닥도 아직 건실하지 못한데 그보다 부실한 프리보드를 어떻게 무턱대고 활성화시킬 수 있겠느냐는 금융감독 당국의 인식은 앞뒤가 뒤바뀐 것 같다. 현실은 그 반대로 프리보드가 활성화돼야 코스닥도 더욱 건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의 가장 큰 맹점은 마이너리그 없이 메이저리그만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프로 축구팀들이 지나치게 수비 위주로 경기를 운영해 골이 터지지 않아 관중의 원성과 외면을 자초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메이저리그 팀이 마이너리그로 절대 강등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마이너리그가 활성화돼 있는 유럽이나 남미의 메이저리그 경기가 항상 박진감 넘치는 이유는 메이저리그 팀도 성적이 나쁘면 마이너리그로 강등 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스닥 시장이 불안한 이유는 중소·벤처기업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려면 상장(IPO)에만 올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벤처 투자자금의 90%가 상장을 통해서 회수되고 있는 게 우리 실정이다. 국내 벤처기업 가운데 4% 정도만 코스닥 시장에 상장돼 있을 만큼 IPO경쟁은 치열하다. 이러다 보니 모든 기업이 상장을 앞두고 무리하게 실적 올리기나 부풀리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투자세액 혜택을 받는 5년만 지나면 자금회수에 혈안이 되는 것도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많은 코스닥 상장사가 시간이 갈수록 부실해지고 갖가지 불법·편법 거래를 초래하는 주된 이유다.

 마이너 투자 회수시장인 프리보드가 우선적으로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야만 메이저리그인 코스닥시장도 구조적인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 활발한 마이너리그가 존재해야만 무리한 메이저리그 진입을 예방할 수 있다. 물론 금융당국의 우려처럼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는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시장이 활성화돼야 투자자 보호도 필요한 것이지 시장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투자자 보호를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