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스모와 e스포츠

[월요논단]스모와 e스포츠

 김신배 SK텔레콤 사장

 

 올해 초 일본 출장 때 일본의 전통 스포츠인 스모경기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스모는 손기술이나 발기술은 물론이고 상대를 쓰러뜨리는 다이내믹한 순발력 면에서도 우리의 씨름만큼 흥미롭거나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경기 자체의 기술적 흥미요소도 많지 않고 한때 봉건제도의 산물로까지 인식되던 스모가 왜 일본뿐 아니라 영국·스페인·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관심을 갖는 인기 스포츠로 성장했을까. 내 나름대로 분석해본 결과 가치를 제공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의 산물인 듯싶다.

 내가 보기에 스모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고객 중심적 마인드다. 친구 또는 가족끼리 단체로 관람하면서 식사도 할 수 있도록 객석 구조까지 배려한 전용경기장을 마련하는 등 젊은층에게 외면당하던 스모를 온 국민의 스포츠로 자리매김시키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외국인에게는 스모경기 관람이 일본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장이 되도록 관심을 유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스포츠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의례처럼 스모선수인 리키시(力士)가 씨름판인 도효(土俵)에 올라가면서부터 승부를 마치고 내려갈 때까지의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선수와 심판의 복식과 예절이 마치 공연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스모는 국제화 과정에서 진출 시장에 따라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스페인에서의 스모는 격투기에 가까운 반면 영국에서는 스모의 전통의례와 형식을 더 강조했다. 이러한 현지화 시도 역시 스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객 편에 서서 접근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둘째, 스모의 인기비결은 거구의 선수뿐만 아니라 스피드를 갖춘 작은 선수도 승리할 수 있는 경기라는 점이다. 체급 구분이 없는만큼 작은 체구의 선수가 거구와 만나 신체조건의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거두면 관중들은 더 큰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래서 스모 최고의 자리인 요코즈나(橫綱)가 아니더라도 인기를 누리는, 스피드 있고 기술 좋은 선수가 많고 이들은 스모의 인기를 높이는 활력소가 된다고 한다.

 셋째, 선수들이 더욱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하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은 성과 중심의 효과적인 인센티브 시스템이 담당하고 있었다. 스모선수에 대한 모든 대우는 그 선수가 속한 등급에 따라 결정되며, 보상은 성적이 우수한 상위권 선수들에게 집중된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은 매 경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단지 선수들 간의 경쟁뿐만 아니라 스폰서들 간 경쟁도 유도한다. 경기장 주위는 상금을 제공하는 회사들이 자사 이름을 적어 넣은 광고 깃발로 가득하다. 인센티브 시스템을 통해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은 스모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번 관람을 통해 우리나라 e스포츠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의 e스포츠는 이제 전 세계 게이머가 꿈꾸는 프로무대가 될 만큼 대단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일부 연령층에 국한된 고객층이나 전용경기장 부재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다양한 게임 종목을 부지런히 발굴해서 e스포츠가 온 가족이 즐기는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도록 유도하고, 진행상 흥미요소를 극대화할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현재도 잘 되고 있지만 인센티브 시스템이 더 효과적으로 갖추어지고 각 게임구단의 든든한 재정 지원이 뒷받침돼 선수양성과 인기 선수에 대한 체계적인 매니지먼트로 팬들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높인다면 대한민국이 e스포츠의 진정한 종주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kimsb@sktele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