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KAIST 빨리 안정 되찾아야

 국민의 기대 속에 취임했던 로버트 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연임에 실패한 이후 KAIST가 계속 표류하고 있다고 한다. 그간의 실패를 거울삼아 KAIST의 비전을 제시하고 한국 과학기술계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KAIST가 비전을 재정립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다가는 세계 톱10 대학진입을 목표로 추진중인 ‘글로벌라이제이션’ 프로젝트도 차질을 빚지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KAIST는 당장 후임 총장 선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초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인사가 총장직을 고사하는데다 과거에 비해 휠씬 높아진 KAIST의 위상에 걸맞은 저명인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KAIST 이사회는 최근 이사회를 열어 학교 정관을 개정해 총장 후보자의 자격 조건을 완화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런 조치를 두고 재계 출신 정치권 인사를 총장으로 영입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정관 내용 중 ‘과학기술원 내외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자나 재직한 경험이 있는 자’라는 문구를 삭제해 외부인사 영입의 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30년간 KAIST가 고수해온 총장 자격의 경계선이 무너진 셈이다. 최근에는 총장 재공모설과 정치인 영입설이 흘러 나오고 있다. 당초 6월 초 개최 예정이었던 이사회도 지방선거 일정을 고려해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래저래 KAIST가 후임 총장 선출을 놓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후임 총장 선출 건에 진전이 없어 KAIST의 역점 사업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니 걱정이다. KAIST가 글로벌라이제이션 프로젝트를 원만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6, 7월이 가기 전에 내년 예산 규모를 확정지어야 하지만 이것이 현재로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낡은 건물 중 대체를 위한 신규 건축사업은 현안에 밀려 말조차 꺼내기 힘들다고 하니 KAIST의 현주소를 알 만하다.

우리는 KAIST가 하루빨리 이런 혼란에서 벗어나 안정을 되찾기 바란다. 이번 러플린 총장의 실패는 우리 과학기술계에 많은 교훈을 주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기술 인재 양성기관인 KAIST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세계적인 대학으로 육성하는 것인지에 대해 모두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비전이나 준비 없이 러플린 총장에게 전권을 맡겨 개혁을 요구한 것도 실패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다시 이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KAIST의 비전을 재정립하고 그동안의 실패 사례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가 와도 같은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 이런 미래 비전을 실천하는 데 적임자를 선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후임 총장이 소신과 원칙을 갖고 미래 비전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도록 재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교수와 학생들이 일체감을 형성해 미래 비전을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선은 적임자를 후임 총장으로 선출해야 KAIST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후임 총장이 결정되면 내부에서도 화합해 현안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후임 총장도 전체 의견을 수렴해 과학기술계의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전력 투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는 혁신을 앞장서 실천해야 하며 우리의 국정 10대 과제인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에 KAIST가 핵심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 KAIST의 혼란은 바람직하지 않다. KAIST가 국민의 기대 속에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한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