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총수의 슬픈 자화상이다. 경제를 살려야 할 기업 총수가 영어의 몸이 됐다.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경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냐는 것이다. 우선 등 따뜻하고 배불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이다. 이 나라 재계 서열 2위의 기업 총수가 자기 회사가 만든 소형차를 타고 구치소로 향하는 뒷모습은 애처롭다.
한 세상 살면서 거듭 죄 짓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자신의 추락 못지않게 그를 믿고 따랐던 직원들의 좌절과 실망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안쓰러움과 배신감이 교차할 것이다. 재계 서열 2위의 총수라면 어떤 위치인가. 그 기업에서는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위치다. 과거에 비해 민주화했다고 하지만 그 위상이 여전히 황제라고 할 만하다.
국가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대단하다. 기업이 잘돼야 국가 경제가 성장한다. 일자리 창출이나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도 기업활동에 달려 있다. 기업의 기술력과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최근 영어의 몸이 되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보자. 그는 흔히 말하는 현대가문(家門)에서 발생한 ‘왕자의 난(亂)’ 이후 현대차를 이끌고 나와 저돌적인 업무 추진력으로 현대차그룹을 재계 서열 2위로 키웠다. 일사불란한 리더십을 발휘한 결과였다는 데 이론이 없다.
정 회장은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그룹 내 모든 업무를 꼼꼼하게 통제하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단점과 장점이 동시에 나타났다. 우선 임원 인사가 잦았다. 럭비공 인사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인사라는 것이다. 경영이건 인사건 예측 가능해야 자신의 일에 충실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그 앞에서 누구도 고언이나 충언을 하기 어려웠다. 극단적으로 말해 주위에 ‘예스맨’을 만들었다.
반면 그룹 성장에는 그런 업무 스타일이 도움이 됐다. 그룹업무를 총괄하면서 현안을 신속하게 결정하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다. 이것이 현대차가 급성장한 원동력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황제 경영은 화를 불렀다. 당장 후계자 승계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말할 사람이 없었다. 그는 외아들을 두고 있다. 편법이라도 하루빨리 외아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고 싶은 조바심이 이번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누굴 탓할 수 없다. 삼성그룹도 다음달 편법 증여와 관련해 총수가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기업 총수도 가정으로 돌아가면 평범한 아버지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귀엽다고 하지 않던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기업을 남에게 주느니 가능하면 자식에게 넘겨 주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인지상정일 게다. 그런 마음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 총수가 정도 경영을 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경영권 승계도 편법을 동원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가 이만큼 국부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기업인의 노력 덕분이다. 수많은 기업인이 흘린 땀이 부국의 기초가 됐다. 이번 일을 거울 삼아 기업인이 죄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은 위기와 더불어 기회도 준다’고 한다. 이제 기업 경영의 리더십도 변해야 한다. 혼자 모든 걸 할 수 없다. 또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편법과 불법을 막고 합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 가정의 달 5월. 아들에게 편법으로 경영권을 넘기려다 영어의 몸이 되는 기업 총수의 슬픈 자화상을 더는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