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평준화될 것으로 예상했던 한국 경제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심해지는 분위기다. 실제 중소기업의 성공사례는 IT강국이라는 명성에도 찾아보기가 쉽지가 않다. 현재 하드웨어(HW)건 소프트웨어(SW)건 IT 성장의 수혜자는 대기업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중소·벤처 기업이 성공할 기회는 없는 것일까. IT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자금·시장 세 가지가 기본적으로 충족돼야 한다.
IT기업이라면 수준이야 어떻든 특정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되기 때문에 ‘기술’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자. 문제는 나머지 두 요소다.
먼저 자금 상황을 보면 국내 투자자본은 기본적으로 ‘고수익’이어도 손실 위험이 큰 기술 투자에 별로 호의적이지 못하다. 사실 자금이 거의 메말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각 IT기업은 투자자에게 장밋빛 사업계획서를 들이밀고 있지만 이중 대다수는 책상 속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벤처성 투자를 할 만한 곳마다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은 ‘이 투자는 얼마나 안전한가’다.
벤처캐피털을 비롯한 대다수 국내 자본은 완성된 기술에 일정 시장이 확보되지 않으면 자금 투입을 꺼린다. 그뿐만 아니라 신생기업의 가치평가도 박하다. 투지와 창의로 무장하고 멋진 승부를 기대하는 신생기업에는 첫 단계부터 어려운 것이다. 아까운 기술이나 사업모델이 부동산이나 간접투자상품에 밀려 제대로 가능성도 보여주지 못하고 사라져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말로만 차세대 먹거리 정책이지 진정 차세대 먹거리를 창조해내는 데 일조를 해야 하는 신진 사업가들에게는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의 이야기일 뿐이고 대기업을 위한 또 다른 메아리라고 투덜거릴 수밖에 없다.
신생 IT기업이 경험하는 또 하나의 어려움은 스스로는 제대로 표현할 능력이 안 되는 자신의 가치를 평가해줄 곳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자기 가치가 얼마인지를 제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진정한 가치는 보유하거나 알고 있는 기술을 이용한 모든 가능성이 대상이어야 하고 기술을 이용한 합리적인 사업모델을 포괄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진정 벤처기업을 성장시켜 한국 경제를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기고 싶다면 기업의 양극화를 좁혀야 한다. 신생기업이 아직 보유하지 못한 부분을 채워 사업모델을 완성해줄 수 있는 투자·평가 기관이 늘어나야 하며 기업 가치는 그 모델 안에서 평가돼야 한다. 또 특정시장을 개척한 기업은 필요 기술을 아웃 소싱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런 기업들에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해야 한다.
현재 정부와 일부 투자기관은 기존 자산·기술·미래 가치 등의 전통적인 평가기준을 벗어나 새로운 투자 체계를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흡하다. 특히 우리 정부의 중소·벤처 기업 육성정책은 거의 기술 존재 여부와 이로 인한 가치창출에만 집중돼 있다. 즉 무언가 기술이 있음을 보여주고 그 가능한 시장이 얼마나 큰가, 얼마의 매출이 가능한가 하는 예측이라기보다는 현재 상황만을 파악하고 지원하는 데 머무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발전 가능성 등 다른 강점이 있어도 일단 상용화된 기술을 구하고 매출기준을 달성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 기술이란 것은 미래 가치의 시발점이 되는 중요한 요소지만 사업 자체는 아니다. 물론 기술기반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체 기술 보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신생기업이 초기 투자로 제대로 된 골격을 갖추기는 어렵다.
정부는 현재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을 ‘기술’이 아닌 ‘기업’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결국 기업의 의지와 기술 획득에 대한 노력만이 제대로 된 벤처 문화를 육성할 수 있는 토대다. 상용화된 기술은 CEO 한 사람만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른 생각을 한 기업의 노력으로 양산된다. 정부는 성장기회를 제대로 부여받지 못해 사장되고 있는 미래 기업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병초 한국외국어대 경영정보학부 교수, bckim@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