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이데올로기다. 종교와 이념이 그동안의 이데올로기였다면 현재는 에너지가 그 위치를 대신하고 있다. 전쟁의 이유가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전쟁은 그 어느 전쟁보다 잔혹하다. 표면적으로는 종교와 이념의 갈등이지만 속을 보면 찬탈을 위한 무지막지한 살상이다.
세계가 에너지 확보를 위해 전쟁을 불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가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 정권 유지의 핵심으로 작용한다. 에너지는 지배의 수단으로 쓰이고 빈부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 못먹는 절대빈곤을 제외하면 소유한 에너지 양에 따라 상대적 빈곤으로 나뉜다. 그렇다고 해서 에너지를 많이 갖고 있다고 무조건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부국과 에너지 강국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자원이 거의 없는 프랑스가 에너지를 수출하고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이 따랐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예는 에너지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준다. 대표적 에너지원인 석유를 둘러싸고 초강국과 산유국 간의 신경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제든 불씨만 있으면 터지는 화약고와 같다. 그때마다 에너지원을 산유국에 의존하는 나라들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는다. 한정된 석유자원을 둘러싸고 반목과 살상이 자행되고 한쪽에선 가슴 철렁 내려앉는 소식을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들어야 한다. 원자력 역시 마찬가지다. 실수 한 번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오기 때문에 모두 두려워한다.
이쯤 되면 에너지가 결코 행복물질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에너지는 없는 것인가. 세계가 앞다퉈 대체에너지,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나서고 있다. 가야 할 기술의 길은 멀고 험하다. 그래도 전쟁과 반목을 불러오는 한정 에너지인 석유보다 낫다는 생각 아래 개발에 몰두한다. 멀지만 희망을 주는 기술이기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인간의 기술은 언제나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에너지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맘대로 쓸 수 있고, 써도써도 없어지지 않는 무한 에너지가 개발된다면 전쟁을 할 필요가 없다. 반목의 이유도 없다. 에너지를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무한 에너지가 개발된다면 기술이 다시 지배의 도구로 활용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지배는 적어도 석유전쟁만큼 참혹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화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