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정보통신연구진흥원장
우리나라는 지난 95년 세계 첫 CDMA 디지털 이동통신 기술 개발을 시작으로 99년 초고속 인터넷 ADSL 서비스에 이르면서 세계 최정상에 오른 통신 강국이 됐다. 관련 장비 및 단말기의 생산과 수출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방송 콘텐츠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로 수출되면서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독자적인 흐름을 유지하며 성장을 거듭해온 통신과 방송은 최근 기술발전에 따라 더욱 넓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합쳐지고 있다. 출렁이던 물결의 흐름이 상호 간 속도가 더해져 더 넓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즉 유선통신과 무선통신의 구분이 없어지고 통신과 방송이 융합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전 세계적인 통신과 방송이 융합되는 컨버전스의 흐름이다. 전통적인 통·방 강국들은 컨버전스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맞아 새로운 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기업들은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고 있다. 또 유선통신과 무선통신의 구분이 없어졌고, 통신과 방송이 융합하고 있다.
세계가 우리나라의 DMB와 와이브로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유무선 통합형 서비스인 와이브로는 유선통신이 제공하는 고효율 전송능력과 무선통신이 갖는 이동성을 통해 유무선의 경계를 허물었다. 또 통·방 융합시대를 이끌어 갈 주역으로 대두되고 있는 지상파DMB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광대역통합망(BcN)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실시간 및 주문형으로 송·수신하는 새로운 광대역융합서비스(BCS)가 추진되고 있다.
이미 미국·유럽연합·일본·홍콩 등 해외에서는 통신과 방송산업 간 융합서비스가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은 IPTV, 유럽은 ADSL TV, 일본은 브로드밴드 방송 등으로 통신 및 방송사업자에 의한 전화, 초고속 인터넷, IPTV 등 통·방 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통·방 융합, 나아가 산업 간 컨버전스를 가속화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이용자 편익을 획기적으로 제고시킬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법과 제도 등 현실을 보면 통신과 방송 등의 컨버전스와 관련된 우수한 기술수준과 잠재적인 시장수요를 뒤따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신규 서비스 도입이 늦어지면 기술이 앞서고도 융합서비스 선점이라는 세계적인 경쟁에서 뒤처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통·방 융합이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고 잠재적인 소비자의 효용 극대화와 새로운 시장의 선점 등 글로벌 컨버전스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법·제도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기술과 성숙한 소비자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데도 국내의 선도적인 통·방 융합 서비스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소비자 후생에는 물론이고 국가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 이중규제를 통한 기업활동을 억제하지 않기 위해 통·방 규제기관을 일원화하고, 서비스의 활성화를 위한 사후규제를 통해 규제의 목적을 충족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누가 규제하느냐’보다는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한 시점이다. 각 기관의 기득권보다는 국가와 국민의 발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정보통신부는 통·방 융합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관련 정부부처와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고, 기업들 간 원활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핵심기능 위주로 재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규제방식에 대한 부처 간 의견대립을 조속히 해소하고 산업 간 기업들의 이해관계도 조정해 더는 관련서비스가 표류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유무선 통신 간의 융합을 통한 ‘거리(distance)의 붕괴’와 통신과 방송 간 결합을 통한 ‘영역(sector)의 붕괴’로 눈앞에 ‘블루오션의 황금어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제 잠시 내려졌던 닻을 끌어올리고, 돛을 달아 넘실대는 블루오션으로 다 함께 힘차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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