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생활 보호의 `두얼굴`

 정부는 법을 어기면서 개인비밀을 캐내고 있는가 하면 의회는 개인정보 유출을 막는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USA투데이와 C넷에 따르면 미국가안보국(NSA)은 9·11테러 이후 미국민 수천만명의 통화기록을 영장없이 수집, 분석해 왔다. 반면 미의회는 최근 개인정보 도용을 막기 위해 상거래 과정에서 사회보장번호(SSN)의 사용과 유출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외신은 사생활 침해 보호에 관련된 미국의 두얼굴에 대한 보도했다.

 USA투데이는 NSA가 미국 3대 통신회사인 AT&T·버라이즌·벨사우스의 협조하에 수천만명의 통화기록을 넘겨받아 미국내에서 일어나는 통화 트래픽에 대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드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NSA가 비록 고객의 이름·주소 등 인적사항은 받지 않았지만 이 조직의 정보수집능력으로 볼 때 전화번호로 관련 개인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미 의회는 즉각 NSA가 아무런 범죄혐의가 없는 시민들의 통화기록을 무차별적으로 수집해왔다는 보도와 관련해 부시대통령의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패트릭 리히 민주당 상원의원은 “미국민 수천만명이 모두 알카에다와 연관됐단 말이냐”며 비판했다.리처드 더빈 민주당 상원의원은 미국민의 사생활 보호가 큰 위기에 놓였다면서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보도내용의 사실 여부는 밝히지 않은 채 정보기관의 정보수집활동은 합법적인 틀 내에서 알카에다 관련자에 한해 진행되며 선량한 시민의 사생활은 켤코 파헤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해에도 NSA가 알카에다와 관련이 의심되는 사람들의 국제전화와 e메일에 대한 도감청을 승인했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물론 일부 공화당 의원까지도 부시대통령의 해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번 통화기록 유출파문으로 부시 대통령이 의회의 반발에도 지명을 강행한 마이클 헤이든 CIA 국장 내정자도 최근까지 NSA국장을 지낸 경력 때문에 상원 인준과정에서 비난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C넷에 따르면 미의회는 개인정보 도용을 막기 위해 상거래 과정에서 사회보장번호(SSN)의 사용과 유출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SSN은 미국에서 상품·서비스를 구매할 때 가장 흔하게 요구되는 개인정보이다. 문제는 SSN이 인터넷 상에서 음성적으로 대량 거래되면서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현재 미 상하원에는 SSN정보를 무단 유출하거나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이 3개나 제출되어 있다.

 에너지통상위 소속의 에드워드 마키 의원은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수사상 목적 이외에 SSN정보의 무단유출과 구매를 모두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공화당의 클레이 쇼 하원의원도 정부 공문서에서 SSN의 노출을 일체 금지하고 소비자가 SSN을 입력하지 않아도 각종 상거래를 제공하도록 규정한 법안을 하원에 제안한 상황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와 의회는 상거래 질서를 파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개인정보 수집을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911 이후 사생활 보호에 대한 미국인들의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SSN의 사용과 유통을 규제하는 법안은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