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중국처럼 자국어 최상위 도메인을 만들자.’
지난 3월 중국이 한자(漢字)로 된 자체 최상위 도메인을 도입한 사례를 여타 국가들도 동참함에 따라 미국의 인터넷 도메인 패권이 위협에 처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은 오는 7월부터 비영문자 기반의 다국어지원 도메인서비스(iDNS)에 대한 테스트에 들어갈 예정이다. ICANN은 iDNS는 인터넷 시스템의 근본을 건드리는 매우 복잡한 문제라며 관련 표준이 완성될 때까지 회원국들이 자국어 도메인의 도입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해 왔다.
하지만 중국이 ICANN을 무시하고 별도 루트 서버로 최상위 한자 도메인 ‘中國(.cn)’, ‘公司(.com)’, ‘網絡(.net)’을 각각 도입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ICANN에 도전하는 도메인 반란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과 이란이 각각 히브리, 아랍어로 된 최상위 도메인을 도입할 의사를 밝혔다. 또 인도, 러시아, 태국, 그리스 등도 ICANN의 표준화 일정을 기다리지 않고 자국어 최상위 도메인 도입을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국어 도메인은 지난 99년 싱가포르 기업 i-DNS.net이 전용 솔루션을 개발한 이후 한국과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수백만개가 넘는 현지 언어 도메인이 등록되어 있다. 그동안 비영어권 도메인은 국가단위(kr, cn, jp 등) 도메인에서 관리되는 특성상 접속범위가 자국내로 제한되기 때문에 ICANN의 국제 도메인질서에 큰 위협은 되지 않았다.
문제는 iDNS 표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ICANN이 관리해 온 최상위 도메인까지 현지 언어로 대체될 경우 인터넷 시스템 전반에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로버트 쇼 인터넷 담당자는 “많은 국가들이 자국어로 된 도메인을 도입하면서 ICANN이 주장하는 국제적 호환성보다는 자국내에서 연결성을 높이는데 훨씬 관심이 많다”면서 ICANN의 iDNS 표준화 추진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ICANN은 지난 수년간 미국이 독점하는 도메인 관리체제를 바꾸라는 세계 각국의 요구로 골치를 앓아 왔다. 중국, 인도, 러시아 등 비영어권 인터넷 사용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미국 주도의 인터넷 정책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과 유럽연합(EU)은 지난해 미국이 독점해온 도메인 관리권을 UN과 공유하도록 요구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 바 있다. ICANN이 빠른 시일내 iDNS 표준화를 이뤄내지 못할 경우 인터넷접속이 언어권에 따라 분리되고 미국의 도메인 패권이 큰 위협에 처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ICANN은 지난주 휴대폰 번호와 e메일, 메신저 아이디 등 모든 연락처를 하루로 묶는 새로운 최상위 도메인 ‘닷텔(.tel)’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 도메인은 사용자가 닷텔 사이트에 올려놓은 연락처를 클릭만 하면 해당 회사, 개인에게 연결되기 때문에 향후 통신시장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닷텔 도메인은 영국의 인터넷 솔루션업체 텔닉이 관리하게 된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