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시큐리티산업 전시회인 ‘IFSEC 2006’ 취재를 위해 영국 버밍엄에 머물던 중 참가 중소업체 관계자들과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 업체 대표의 숙소에서 조촐하게 벌어진 술자리 테이블에는 한국서 가져 온 소주와 꽁치통조림이 올랐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업계의 크고 작은 얘기들이 화제가 됐다. 주로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와 CCTV카메라, 생체인식 솔루션을 다루는 좁은 업계라 얽히고 설킨 관계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중소벤처 업계의 고질병인 ‘사람 빼내가기’에 대한 아픔이 가장 컸다.
“엊그제 까지 A회사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갑자기 B회사로 옮겨 전시장 맞은편 부스에 나와 있는 걸 보면 마음이 좀 불편하더라” “한 업체 출신들이 모여 다른 회사를 설립해 새 출발하는 것이야 뭐라 할 수는 없어도 여러 명이 한꺼번에 경쟁회사로 옮겨 일하는 것은 보기가 좋지 않다”는 말이 쏟아졌다.
앞서 만난 이 분야의 한 CEO는 대기업으로 옮기는 직원에 ‘이직 동의서’를 써준 뼈아픈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 기업은 이직에 따른 법적인 분쟁을 피하고 싶었겠지요. 써주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안 써주자니 ‘직원의 앞길을 막는다’는 내부 동요가 걱정이 됐습니다.” 그는 “기술력이나 직원 대우나 여러 면에서 대기업보다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해 왔지만 ‘결혼하려니 처가에서 우리 회사가 뭐하는 곳이냐’며 반대한다고 불평하는 부하직원을 볼 때면 마음이 착잡하다”고도 했다.
IFSEC가 다루는 분야인 시큐리티산업만 해도 수백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꾸준히 등장하는 대표적인 중소기업 품목이다. 이번 전시회에도 지난해보다 부쩍 늘어난 50여개 회사가 한국관에 참가했다.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는만큼 국내에서도 좋은 기술을 가진 회사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사람과 기업으로 이루어지는 인프라는 여전히 척박한 것이 현실이다. 틈새시장을 개척한 중소기업들이 앞선 기술뿐 아니라 기업과 사람에 대한 시장 안팎의 높은 평가를 받아내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IT코리아’의 내실을 다지는 중요한 과제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