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간한 ‘글로벌 정보기술 보고서’의 ‘2005 네트워크 준비지수 순위(NRI 2005)’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수준은 전 세계 115개국 중 14위였다. 겉으로만 보면 지난 2004년의 24위에서 10단계나 상승했다. 하지만 속내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초고속인터넷 접속사업자(ISP)의 경쟁력(3위), 전자정부화(4위) 등은 비교적 우수하다. 그러나 ICT의 시장환경(15위), 정치 및 규제환경(19위), 인프라환경(24위)은 부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 최고의 IT강국이라는 자부심이 무색할 정도다.
WEF 보고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매우 분명하다. 지난 1997년 IMF 관리체제 이후 급성장한 IT기술을 기반으로 초고속인터넷 등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는 국가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경제적 인프라는 미국 등에 비해 여전히 뒤처진다는 사실이다.
21세기 기업경영의 키워드는 단연 ‘글로벌’을 꼽을 수 있다. 석유 등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기술집약적인, 특히 ICT 같은 분야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보유해야만 치열한 세계 경제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대만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는 국내 IT산업이 다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적인 인프라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날로 심화되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없애기 위해 교육제도를 개선하고, 글로벌 기업이 요구하는 맞춤형 IT 고급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 및 연구 인프라 구축에 과감히 투자해야 하는 시점이다.
산·학 연계를 통한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ICU처럼 기업과 대학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공동으로 교과과정을 개발하며, 기업 및 연구소의 전문가를 교수로 활용하는 방안도 좋은 모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울러 IT 영재를 조기에 발굴, IT기술과 영어로 철저히 중무장시켜 이들을 글로벌 IT 인재로 양성하는 한편 중동과 중남미 등 성장 가능성이 큰 신흥 IT 전략국가의 우수 인재를 유치해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향후 이들을 통해 국내 IT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미래 IT산업의 핵심으로 전 분야에 걸쳐 파급 효과가 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SW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마련도 시급하다. 지난 2002년 MS의 직원 1인당 순이익은 15만6000여달러로 매출 규모가 4배 이상 큰 GE(6만8000여달러)의 2.3배나 된다. 이처럼 SW산업은 엄청난 국부를 만들어내며 최근 임베디드 SW산업이 차세대 IT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감안, 고급 SW기술 개발인력 양성을 위해 ICU와 같은 전문교육기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전 세계 IT 아웃소싱 분야의 시장이 확대되는 추세인만큼 국내 업체들의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지원체제 확립과 서남아시아·남미 등 신규 시장 개척을 비롯해 다양한 지원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의 규제정책 또한 기존 사업자 위주에서 소비자 중심의 시장친화적인 정책으로 대폭 완화돼야 하며 대기업과 중소 벤처기업이 서로 장점을 살려 시너지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이를 상호 연계해 주고 강력하고도 일관성 있는 정책 등 IT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적 환경 조성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빌보드 차트’성 정책이 국가경제 발전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는지 수없이 목격했다. 세빗(CeBit) 전시회 기간에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자랑스러웠다고 고백한 어느 기업인의 말처럼 자부심을 계속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볼 때가 온 것 같다.
◆허운나 한국정보통신대학교 총장 jyna@i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