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남북경협과 `정보의 섬`

[통일칼럼]남북경협과 `정보의 섬`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시 방북할 모양이다. 역사적인 남북정상의 6·15 공동선언이 있은 지 6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IT 분야의 남북 협력은 공동선언 당시의 의욕과는 달리 소강국면을 보여 온 것 같다. IT 분야의 경협사업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이렇게 초기의 기대와 크게 달라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북한 IT산업 종사자들의 실력을 우수한 수준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의 교육체계는 아직까지도 인문 및 사회과학이 우선이고 자연과학마저도 공학보다는 기초과학 비중이 크다. 내가 만나 본 북한의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자기가 김일성대 출신임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는데, 대학 입학 당시의 제1지망은 철학이었으나 대입성적이 부족해서인지 2지망인 수학을 전공하게 됐고 졸업 후에는 전공에서 약간 변형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가 됐다고 한다.

 둘째, IT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프라가 미흡하다. 북한의 IT산업 현장에서 사용중인 PC는 대부분 중국의 무명회사 제품을 수입해 북한 나름대로의 한글체계에 맞게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이를 북한에서는 조선어화라고 부르고 있다. 또 우수 소프트웨어 및 프로그램을 구입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소프트웨어가 가장 적합한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중국 왕래가 가능한 극소수 엔지니어의 공급에 의존할 따름이다.

 셋째, 경협 당사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북한의 엔지니어와 기술적인 토의를 해보니 용어의 다른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기의견을 마음놓고 제시할 수 없는 게 북한의 현실이었다.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담당업무에 종사하는 실무자끼리의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쪽 의견은 마음대로 전할 수 있으나 북쪽의 의견은 받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당사자끼리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때는 큰 문제가 없으나 이때도 항상 윗선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사소한 부분까지 지도자의 의견 내지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례가 많다. 더구나 원격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경우 매우 답답해질 때가 많다. 인터넷은 차치하고 전화, 팩시밀리, e메일 등의 통신수단을 거의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e메일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e메일은 받는 게 매우 어렵다. 기술적인 사항을 매우 자세히 설명하면서 예스(Yes) 또는 노(No)로 답할 수 있도록 메일을 보내도 회신을 받으려면 며칠씩 걸린다.

 다행히 남북 교류가 어느정도 활성화되면서 북한은 교육체계를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른 시일 내에 최신의 고급기술을 확보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도 보이고 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정보가 많이 축적돼 소프트웨어 인프라는 매우 빠르게 나아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원활한 의사소통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IT 분야의 남북경협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선결돼야 할 것 같다. 이를 위해 그 나름대로 ‘정보의 섬’을 구축해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일정구역을 지정해 여기에서는 외부와의 e메일, 전화 및 인터넷 사용 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곳에 체류하는 사람들을 당국이 엄정하게 선발하고 필요하다면 외부와의 통신에 대해 실시간으로 감시 또는 검열을 하면 될 것이다.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방북을 계기로 의사소통 문제가 해결돼 IT 분야의 경협사업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 좀더 나은 성과가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천방훈 삼성전자 전무 benchun@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