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면서 가격이 폭락하는 등 IT업계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 전자산업 대표기업들은 오히려 공격적으로 생산라인을 증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삼성전자는 7년간 330억달러를 투자해 9개 반도체 생산라인을 신설한다는 장기 플랜을 공개해 업계를 긴장시킨 바 있다. 바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원가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규모의 경제’를 통해 산업의 볼륨을 키워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는 전략은 이제 제조업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도메인 시장을 예로 들면 닷컴 열풍이 불기 시작할 무렵인 97년 당시 전 세계적으로 등록된 일반최상위도메인(gTLD) 수는 150만건 정도로 일반인이 닷컴(.com) 도메인을 등록하기 위해 지급한 액수는 건당 연간 35달러였다. 9년이 지난 오늘날은 과연 어떨까.
도메인 통계 자료를 제공하는 사이트의 자료를 보면 2006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등록된 gTLD의 수는 약 6500만건으로 매주 새롭게 생성되는 도메인의 수만 해도 400만건이 넘으며 300만건이 넘는 도메인이 같은 기간 소멸된다고 한다. 97년과 비교해 볼 때 등록건수는 무려 43배나 증가했으며 등록원가는 약 6달러로 낮아졌다.
도메인은 그 특성상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한 고정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반면에 등록건수 추가에 따른 가변비용이 낮기 때문에 등록건수가 증가할수록 운영기관이 부담하는 평균비용은 감소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 절감의 전형적인 사례다.
오늘날 케이아르(kr) 도메인은 9년 전에 .com이 겪었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97년 당시 8000여 건이었던 kr도메인은 2006년 현재 67만건으로 크게 늘어났지만 시장규모 면에서는 여전히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이 같은 국가최상위도메인(ccTLD)의 상대적으로 높은 등록수수료는 비단 kr도메인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com 등의 gTLD에 비해 6∼10배 비싼 등록수수료(3만5000∼6만원) 때문에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런 연유로 ccTLD의 등록수수료는 일반적으로 gTLD보다 무척 높은 편이다. 등록건수가 6만건 정도인 ir(아일랜드) 도메인은 등록수수료가 무려 11만5000원이나 되며, kr도메인과 비슷한 등록건수를 가지고 있는 au(호주)는 2만원 정도다. 물론 ccTLD 중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를 지닌 uk(영국 480만건), nl(네덜란드 190만건), it(이탈리아 120만건), be(벨기에 110만건) 도메인은 등록수수료를 gTLD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kr도메인의 경우 오는 9월 기존의 체계를 크게 개선한 2단계 kr도메인이 도입될 예정이다. 새롭게 도입되는 kr도메인은 도메인의 속성을 나타내는 중간단계(예: co, or, go 등)가 생략된 형태며, 2단계 kr도메인이 도입되면 kr도메인의 이용 환경이 개선돼 kr도메인의 양적·질적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 산업은 소규모 사업자가 기술력만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형태로 가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전통적으로 적용되던 농업·유통업뿐만 아니라 최첨단 IT산업까지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시장을 확장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게 된 것이다.
물론 국가도메인은 특성상 한 국가의 사이버 정체성과 연결돼 있고 등록수수료가 국내 인터넷환경 개선을 위해 재투자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단순히 가격만으로 경쟁력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kr도메인이 대한민국 국가도메인으로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시장 확대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한 가격경쟁력의 강화는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다.
◆서재철 한국인터넷진흥원 인터넷정보센터장 sir@ni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