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방융합’ 혹은 ‘방·통융합’이라는 용어를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통신과 방송을 융합하려는 시도가 벌써 10여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논의를 할 때마다 통신과 방송, 양측의 의견은 평행선과도 같다는 점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용어 사용만 봐도 첨예한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통신 측은 ‘통·방융합’이라 하고 방송 측은 ‘방·통융합’이라 한다. 양측이 생각하는 방송과 통신의 개념과 범위도 다르다. 방송사업자는 방송은 물론이고 IPTV와 같은 협송(narrow casting), 네트워크 사업까지를 모두 방송에 포함시키려 하고 통신사업자는 콘텐츠의 자체 생산과 이를 전송하는 올인원(all in one) 스타일까지 통신 영역으로 두려고 하고 있다.
특히 양측 갈등의 최정점은 IPTV다. IPTV란 인터넷 프로토콜을 이용, 별도의 셋톱박스를 통해 일반 TV와 연결함으로써 방송을 수신하는 형태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IPTV가 도입되면 우선 프로그램제공업체(PP) 산업의 구조 개편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PP 등록제 실시 이후 시장에 진입해 있는 많은 중소 PP는 현재 30여개의 한정된 채널 수로 인해 SO들과의 계약에서 매우 종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SO들의 과도한 시장 파워나 SO와 PP를 겸하는 MSP들의 불공정 행위로 인해 영세 PP들의 채널 진입이 어려운만큼 내심 IPTV 도입을 반기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자금 및 제작능력에서 경쟁력을 갖춘 복수 PP(MPP)에 비해 단일 PP들의 경쟁력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필연적으로 MPP로의 편입을 가져올 것이다. IPTV의 등장으로 경쟁관계에 놓일 통신사업자와 케이블 SO 간의 사업자 융합도 나타날 수 있으며, 현 상태의 갈등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볼 때 상호 연합의 가능성을 의미할 수 있다. 이처럼 IPTV의 등장은 업자들 간에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과도기에는 분명히 혼란의 시기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통신은 통신이고, 협송은 협송이며, 방송은 방송이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무식한 개념 정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결국 통신은 주체가 네트워크고, 방송의 주체는 콘텐츠다.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방송과 통신, 통신과 방송은 서로 통합이나 융합보다는 협업이나 분업이 이뤄져야 한다. 즉 통신과 방송은 실과 바늘 같은 존재다. 바늘과 실은 어느 하나만으로는 꿰매는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실과 바늘은 협업이 돼야 제대로 일을 수행할 수 있다. 각자의 의견만 주장한다면 바늘을 잘못 다루다 찔려서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통신과 방송은 상호보완적 역할이지 따로 일 수가 없다.
TV가 처음 보급됐을 때 많은 사람은 라디오나 극장이 망할 것이라고 했고, 필름으로 광고나 애니메이션을 촬영하고 편집하던 시절 VCR가 장착된 비디오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광고주나 프로덕션은 필름카메라의 종말을 고했던 적도 있다. 새로운 기술과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과도기적인 시기에 기존의 것들과 대립의 순간이 있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체로 각자의 자리에서 고유의 역할을 하고 있다.
IPTV든 DMB든 공중파든 케이블방송이든 방송 분야는 콘텐츠 개발을,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통신 분야는 네트워크 기술 발전에 힘을 쏟아 각기 발전적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즉 통신과 방송은 각자 고유 영역으로 분리해야 하고, 이 둘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걸맞은 제도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일본·미국·유럽은 이미 시작했다. 우리는 앞서 기술을 개발하고 준비는 모두 끝내 놓고도 서로 영역 싸움을 벌이느라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통·방융합을 해결하는 방법은 각자 실과 바늘의 역할로 다이버전스를 하여 분열을 꿰매고 꽉 막혀 있는 통신과 방송의 급체를 풀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방송은 방송이고 통신은 통신이기 때문이다.
◇한기호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방송대학위성TV 감독 (한양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kihohahn@kno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