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시장 전면경쟁 10년…살아남은 자 만이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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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6년 6월 10일 오후 2시. 정보통신부 기자실에는 희비가 교차하는 탄성이 울렸다.

한국통신프리텔(KTF)·LG텔레콤·한솔PCS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PCS 사업권을 획득한 것이다. 특히 LG텔레콤은 삼성·현대 그룹 컨소시엄이었던 에버넷을 제치고 장비업체군에서 사업권을 따내 최대 뉴스메이커로 등장했다.

정통부는 또 이날 신규통신서비스 PCS 외에 △주파수공용통신(TRS) △무선데이터 △발신전용 무선전화(CT2) △지역무선호출 △제3의 국제전화 △전기통신 회선임대의 7개 분야에 걸쳐 27개사업자를 선정·발표했다. 이날 일은 한국 통신시장 구도를 점쳐볼 수 있는 대사건이었다.

 그런데 꼭 10년이 지난 오늘날 이들 사업분야나 사업자의 운명은 어떠한가. 유사 서비스의 동시대 경쟁 결과는 사업 역무 폐지와 인수합병 등으로 이어지면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무려 20개 사업(기업) 분야가 폐지됐다. 특히 지역 사업자는 사실상 거의 사라진 셈이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통신 서비스 시장에 앞다퉈 나섰던 신흥기업 세력은 LG를 제외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30대 그룹 ‘신천지’ 잡기 경쟁, 삼성 울고 LG 웃었으나 = 당시 신규 통신사업 허가에는 30대 그룹을 중심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이 모두 도전장을 냈다. PCS사업권을 딴 한솔이나 TRS 분야에 진출한 대성, 아남그룹은 물론이고 탈락한 그룹 모두에 통신사업 진출은 21세기 그룹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기회로 받아들여졌다. 지금 말하는 ‘블루오션’이 신규 통신시장 진출이었던 것이다. ‘신천지’에 대한 엄청난 기대 속에 벌어진 건국 이래 최대 경쟁의 결과는 대그룹 가운데 LG가 웃고 삼성이 우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비 IT 영역에 있던 한솔그룹의 진출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상반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삼성은 서비스 시장 진출 기회를 놓친 대신 통신장비 시장의 최고자리에 등극하게 됐다. 반대로 장비와 서비스를 결합,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던 LG그룹은 데이콤 인수에 성공했진만 사실상 통신 시장에서 3순위로 밀리며 부침을 거듭해왔다. 당시 “한국 통신 시장에서는 수직적 사업구조가 성공할 수 없다”는 일부 주장이 현실화된 셈이다.

◇지역사업자 대부분 사업 접어 = 통신시장의 완전 경쟁 시작에 찬바람이 분 것은 CT2 사업 폐지부터다. 셀룰러 2개 사업자를 포함한 5개 이동통신 사업자의 경쟁이 본격화된 98년, 사업 허가 2년 만에 KT를 제외한 지역 CT2 사업이 좌초됐다. KT 역시 이듬해인 99년 사업을 접어 CT2 서비스는 가장 단명으로 생을 마감한 통신서비스로 기록됐다. 지역 TRS 사업자의 운명도 비슷하다. KT가 CT2 사업을 포기한 그 해, 광주·충남·전북·부산 4개 지역의 TRS 사업자(당시 지역 무선호출 겸업)들이 백기를 들었다. 이후 2000년 나래앤컴퍼니·전북이동통신·제주이동통신 등 4개 지역 무선호출 사업자가 줄줄이 사업을 포기했으며, 현재는 사실상 무선데이터 사업자로 출발한 리얼텔레콤이 사업을 인수, 전국 사업자 형태로 남아 있는 형국이다. 회선설비 분야에서는 두루넷이 2003년 사업을 포기한 후, 초고속 역무로 사업을 추가해 변신을 꾀했지만 하나로텔레콤에 합병됐다. 제3 국제전화 사업자 온세통신 역시 최근 매각되는 운명으로 귀결됐다. 정통부 통계에 따르면 2000년까지 CT2·TRS·무선호출·위성휴대통신(GMPCS) 등 역무 기준 20개 사업이 폐지됐다. 기존 통신사나 전국 사업자를 제외하고 지역 사업자는 모두 과거에 묻힌 셈이다.

◇ 융합시대, KT·SK·LG 그룹 3각 편대 힘겨루기 주목 = 10년이 지난 현재 살아남은 기업은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4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향한 기술발전 과정에서 시장은 다시 한번 격변기를 맞을 전망이다. 당시 27개 사업자 선정 이후에도 제 2·3의 시내전화 사업자 및 초고속인터넷접속 사업자가 선정된 것을 비롯해 지난해에는 휴대인터넷(와이브로), 3.5세대이동통신(HSDPA) 등의 신규 서비스가 새로 허가됐다. 대부분 기존 사업자가 추가로 사업권을 획득하는 형태지만, 유무선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통신·방송 간 영역이 모호해지는 융합기술이 등장하면서 시장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10년 전 경쟁구도가 단일 서비스 간, 물리적인 형태로 벌어졌다면 향후 10년은 경계를 넘어선 화학적 결합을 전제로 한 경쟁구도로 펼쳐진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이런 구도는 실질적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KT·SK·LG 세 그룹 간 경쟁과 합종연횡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 유력하다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신혜선기자@전자신문, shin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