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를가다](19)일본 타마클러스터

타마산업활성화협회 사무국. 사무실 크기는 작지만 지자체와 금융기관, 지역 기술단체 등에서 파견된 총 16명의 직원이 기술 개발 등 6개 분야에 포진해 활동하고 있다.
타마산업활성화협회 사무국. 사무실 크기는 작지만 지자체와 금융기관, 지역 기술단체 등에서 파견된 총 16명의 직원이 기술 개발 등 6개 분야에 포진해 활동하고 있다.

“3년 전쯤에 협회에 가입했죠. 하지만 협회나 정부가 기술 개발이나 마케팅, 또는 산·학·연 연계를 위해 특별히 지원해주거나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루에 수차례씩 받는 산업 정보 메일을 통해 우리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접근합니다.”

 일본 내 대표적인 기술혁신형 클러스터로 전기·전자기계·정밀기계 집적지로 알려진 타마클러스터(TAMA:Technology Advanced Metropolitan Area). 이곳을 알기 위해 방문한 3테크사의 히사노 게이치 사장 얘기는 뜻밖이었다. 체계적인 정부지원과 산·학·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첨단 기술 개발 및 마케팅 관련 성공 사례를 다수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히사노 사장은 “외부의 도움은 없다.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하고 필요하면 직접 행동으로 옮긴다”며 정부 주도의 한국 클러스터 정책을 오히려 부러워했다.

 약 5년 전부터 동종 중소기업 간 제휴 협력 단체인 EMS(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를 조직해 이끌고 있는 그는 지난해 이곳 타마클러스터와 한국산업단지공단 사이에 교류가 시작됐다는 것을 알고 글로벌 기업에 대한 공동 납품 및 공동 기술개발을 목적으로 한국과 일본 내 20개 중소기업이 참여하는 EMS-R2를 결성해 국제 교류에 나서고 있다.

 도쿄도 하치오지시에 위치한 엘리오닉스는 반도체 등 첨단 부품소재 제조 및 계측 장비를 만드는, 한국에도 꽤 알려진 중견기업이다. 이곳의 세이고 혼메 사장은 “중소기업 한 곳에서 첨단 장비와 기술을 갖추게 되면 누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관련 업계에 파생 효과가 나타나고 산·학 연계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며 “우리는 앞선 기술력으로 업계의 선도 기업 역할을 해나가길 원하고 이를 통해 우리 나름의 비전을 만들어간다”고 말했다.

 타마클러스터. 국내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일본의 산업클러스터 중 하나. 도쿄시 서쪽으로 도쿄도와 2개현에 걸쳐 약 3000㎢ 규모로 형성돼 있고 역내 제조업 수만 2만개를 넘는 곳. 제품 출하 등 경제창출 규모만 연간 24조엔에 달하는 타마클러스터의 경쟁력은 기업 스스로 생존 방법을 찾고 이를 미래 비전으로 연결해 가는 자가혁신에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 선진 클러스터의 형성 과정은 한국이 추진하는 국가산업단지 중심의 정부주도형 혁신클러스터와 다르다. 타마클러스터는 지난 1970년 시작된 일본 정부의 공장 이전정책과 고유가 등으로 인한 비용절감을 꾀해 외곽 지역을 선호하게 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전으로 형성됐다. 이어 대학과 연구소도 넓은 공간과 쾌적한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타마지역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현재 확정된 타마클러스터 지역(Zone)은 지난 2001년 타마산업활성화협회가 발족하면서 회원 자격을 구분짓기 위해 편의상 설정한 영역이다.

 그래서인지 타마클러스터에 속한 기업 사이에 소속감은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타마클러스터 내 기업이라 해서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본 정부나 지자체, 또는 협회의 자금 지원을 받는 기업도 소수에 불과하다. 누가 요구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뚜렷한 지원책을 내세워 이끌어 주는 것도 아니지만 이곳의 기업과 대학, 연구소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모였고 타마존에서 필요한 요소를 찾아 미래 비전을 키워 나가고 있다.

 기업의 자가 혁신 노력은 후지 인큐베이션 오피스(FIO)라는 대기업의 벤처 지원 사업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지난 2001년 11월에 설립된 FIO는 타마 지역의 대표기업 후지전기가 지역사회 공헌 차원에서 만든, 중소기업을 위한 대기업의 자원봉사 창구다.

 20여개 창업보육 단계의 기업이 후지전기의 기술 및 마케팅 지원 아래 꿈을 키워 나간다. 여기서 창업 및 기술 개발 자문을 맡고 있는 아오키 가쓰히코 매니저는 “매년 운영 면에서는 적자지만 후지전기와 지역 중소벤처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한편으로는 후지전기 자체의 R&D 인력에 대한 지원과 분발을 촉진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타마클러스터 기업들은 폭넓은 해외 교류를 통해 자체 경쟁력을 배가시키고 있다. 구체적인 타마클러스터의 경쟁력을 알아보기 위해 방문한 타마산업활성화협회에는 교류를 위해 찾아 온 프랑스의 지방도시 산업 관계자들을 볼 수 있었다. 협회에는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외국의 산업 관계자들이 찾아오고 협회는 이를 관련 업종의 기업이나 단체에 소개한다.

 “정부나 협회의 역할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 타마에는 수없이 많은 기업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 모든 기업에 고루 돌아갈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하거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일일이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회를 만들고 이를 성공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기업의 책임입니다.”

 협회 오카자키 히데토 사무국장은 “기업 스스로 문제점을 찾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협회의 기본 임무”라며 “타마클러스터가 지닌 경쟁력은 기업의 자발적인 생존 의지와 노력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부산=임동식기자@전자신문, dslim@

  

◆인터뷰-히데토 오카자키 타마산업활성화협회 사무국장

 “잃어버린 10년이라 얘기할 정도로 과거 일본 전체 중소기업의 매출은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타마지역의 중소기업 매출은 꾸준히 늘어났죠.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지역의 경쟁력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오카자키 히데토 타마산업활성화협회(http://www.tamaweb.or.jp) 사무국장은 일본 내 여러 클러스터 중에서 타마의 경쟁력은 남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70년대 중반 공업 집적지로 형성되기 시작해 현재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NEC·도시바·후지쯔 등 대기업 공장과 연구소 그리고 40여개의 이공계 대학이 밀집해 전기·전자·기계 제조품 생산량은 전국 평균 2배에 이른다는 것을 그 근거로 내세웠다.

  그는 “대기업에서 나온 엔지니어들이 독자적으로 회사를 설립해 자체 연구개발과 상품 개발에 나서면서 타마의 변화가 시작됐다”며 “이제는 이런 중소기업들이 활발한 해외 교류를 펼치며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것이 타마의 변화상”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1년 발족해 7년째를 맞은 협회는 과거 5년간을 정착기로 여기고 내부 역량을 갖추는 데 집중했다. 현재 350개 기업과 40개 대학 그리고 지자체와 상공업 단체 70여곳을 회원사로 확보한 가운데 지난 해부터 다시 5년간의 성장기 계획을 실행에 옮기며 기업의 해외 교류를 중점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구미와 안산 방문 등 한국산업단지공단과의 교류도 이의 일환이다. 이탈리아와는 산업디자인 부문에서, 캐나다와는 공동 기술 개발에서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오카자키 국장은 타마클러스터 내 많은 기업이 한국 기업과의 교류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 수준이나 사고 방식 등에서 한국과 일본은 여러 면에서 비슷하기 때문에 기술 교류를 통한 공동 발전은 중국이 아닌 한국과 이뤄지는 것이 서로 좋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일본 기업 시작으로 볼 때 품질관리 측면에서 1%가 부족한 것이 한국 기업의 흠이라면 흠이기에 이에 대한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기업과 기업 `신연계` 바람

 타마클러스터 내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갖고 집중하기 시작한 ‘신연계’는 해외 교류 붐과 함께 협회는 물론이고 지자체와 정부 차원의 관심도 매우 높은 분야다. 다른 말로는 ‘새로운 네트워크’로 해석되며 이는 친목단체로 변질됐거나 친목 이상의 발전이 없는 동종 업종 간, 또는 이업종 간 교류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비즈니스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자 새로운 기류다.

 하나의 사례로 첨단 이온빔 장비를 개발·생산하는 타마클러스터 내 엘리오닉스사는 자사 보유 장비를 클러스터 내 여러 중소기업과 대학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여기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나 제품 아이디어가 나오면 이의 상용화에 공동 투자하거나 관련 기업이 모여 연구개발에 보조를 맞춰 나간다.

 엘리오닉스의 혼메 사장은 “언뜻 첨단 장비를 저가 내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이 무모하게 비칠지 모르지만 제공받는 기업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우리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며 “고가의 외국 장비를 사용하던 대학으로부터 새로운 국산장비를 개발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기도 하고 또 우리의 주 고객인 기업에 상당한 구전 홍보 효과도 거둔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연계는 고가의 첨단 장비를 중심으로 결성되기도 하지만 수없이 쏟아지는 신상품의 개별 판로 개척을 위해 형성되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 중소기업들이 양국 대기업을 상대로 공동 납품을 위해 결성한 EMS-R2 역시 이 같은 신연계의 일환이다. 모든 것은 철저하게 사업성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신연계의 특징이다.

 이에 대해 타마클러스터를 관할하는 일본 관동경제산업국 지역진흥과의 가나자와 신기 주임은 “지난해부터 정부 지원기관은 물론이고 협회 등도 새로운 상품과 아이템을 내놓을 수 있는 기업 간 조직과 단체에 집중 지원을 시작하고 있다”며 “첨단 기술 개발을 넘어 이를 어떻게 상용화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한 것인지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