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함께 월드컵을 시청하는 날

우리나라의 월드컵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북녘땅에서는 어느 정도가 우리의 16강 좌절 소식을 알고 있을까. 이 아쉬움을 실시간으로 함께한 북한 주민은 얼마나 될까. 며칠이 지났으니 많은 수의 북한 주민이 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만 우리와 같은 시각에, 그것도 TV 화면으로 함께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00만명이 넘는 북한 주민 중 TV를 시청할 수 있는 사람은 1000만명 남짓으로 추산되나 평양시민 250만명 중 대부분은 집 또는 주위의 시설에서 TV 시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북한의 TV방송은 PAL 방식으로 남한의 NTSC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일반인의 TV 수상기로는 전파가 잡힌다 하더라도 남한의 방송을 전혀 시청할 수 없다. 당 간부 등 특수 계층 사람들은 위성 안테나를 설치해 중국 또는 남한의 방송을 볼 수 있으나 이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와 동시에 월드컵 생중계를 본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이번 독일 월드컵 경기가 실시간이 아닌 녹화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다.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에 따르면 북한에서 월드컵 경기 소식에 대한 방송이 11일 시작된 이후 (개막전인 독일 대 코스타리카 경기는 우리 시각으로 10일 새벽에 열렸음) 평양시민은 연일 TV 앞에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평양시민은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1 대 0으로 격파하며 8강에 진출한 감회에 빠져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조선중앙TV는 17일 밤에 한국팀의 1차전 경기인 토고와의 경기장면을 편집해 33분간 방영했다. 남한방송을 통해서도 소개된 일부 방송내용은 매우 덤덤한 진행과 우리에게 생소한 북한식 용어가 있어서 꽤나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박지성 선수를 전방과 후방을 넘나드는 ‘팔방돌이’라고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팔방돌이란 아마도 멀티 플레이어를 칭하는 말일 것이다.

 비록 녹화방송이라 할지라도 북한주민이 TV로 월드컵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달 북한의 조선방송위원회가 우리 측 방송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월드컵 주요 경기를 시청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고, 방송위가 FIFA 마케팅 대행사와 협의해 약간의 중계료를 주고 북한에서도 시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가 위성을 통해 받은 월드컵 경기 화면을 자막이 없는 원화면과 현장음만으로 편집하고 KT가 다시 PAL 방식으로 변환, ‘타이콤 3’ 위성을 통해 북한으로 송출했다. 이 신호를 조선중앙TV가 받아 편집한 후 진행자와 해설자의 덤덤하고 독특한 멘트와 함께 북한 전역에 방송한 것이다.

 2002년 남북경협사업의 일원으로 방북했을 때 축구를 좋아하고 잘한다는 평양의 한 엔지니어에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아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부터 월드컵 주요 경기를 줄곧 시청했고 2002년 월드컵 경기도 관심을 가지고 볼 예정이라고 했다. 물론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으로 보았을 것이다. 다만 1994년 미국 월드컵 때의 결승전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는 이유를 잘 몰랐으나 7월 8일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만큼 7월 19일에 치러진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결승전은 방영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는 남한팀 경기를 본 적이 없으나 6·15 공동선언으로 2002년의 경기는 볼 수 있을 것이라던 기대 섞인 말이 기억에 남는다.

 폐쇄적인 북한사회에서도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지금의 월드컵 열기와 북한주민의 욕구가 어우러져서 언젠가는 남한의 아나운서와 북한의 해설자가 함께하는 월드컵 중계방송을 볼 수 있지 않을까. 4년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제19회 월드컵 축구대회를 기대해 본다.

◆천방훈 삼성전자 전무 benchun@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