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성 삼성전자 DM총괄 사장
숱한 화제를 뿌리며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월드컵도 4강 진출팀이 가려져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월드컵과 텔레비전. 언론에 ‘월드컵 특수’에 대한 보도가 자주 나오면서 TV업계가 일방적으로 월드컵 덕을 보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지만 사실 월드컵의 인기는 TV에 기인한 바가 적지 않다. 일례로 이번 월드컵 경기를 보는 TV 시청자 수는 연 인원 400억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에 입장권을 사 직접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은 약 320만명에 불과하다. 운동장에서 직접 경기를 보는 관중 수보다 1만배 이상 많은 사람이 TV로 경기를 보는 셈이다. 이처럼 TV를 통해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방송 중계권료도 급상승해 현재 FIFA의 최대 수입원으로 자리잡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월드컵이 TV산업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 월드컵 경기가 처음 TV 전파를 탄 것은 우리나라가 사상 처음으로 본선 무대에 진출한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이다. 그러나 TV 보급이 저조하고 방송 기술상의 문제까지 겹쳐 월드컵 중계가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다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주요 장면을 다시 볼 수 있는 리플레이 기술이 도입되면서 TV 보급 확대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고, 70년 멕시코 월드컵 때부터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경기가 생중계되면서 TV는 본격적인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됐다.
이번 독일 월드컵은 LCD 등 대형 고선명(HD) TV와 DMB로 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거친 호흡과 땀방울까지 선명하게 보고 들을 수 있어 현장감을 최대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도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IPTV를 비롯한 차세대 TV들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를 보는 도중 선수들의 신상 명세나 팀 전적을 검색할 수 있고, 선수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과 같은 제품을 즉석에서 구매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월드컵이 TV산업 발전 단계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월드컵 진출사와 TV산업 성장사도 크게 보면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86년 이후 월드컵에서 단 1승도 못 거두고 16강 진출에 실패했는데 이때는 우리 TV산업이 일본 기업들에 기도 못 피고 끌려 가던 때와 유사하다.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원정 첫 승을 포함해 결코 녹록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난공불락 같던 세계 TV 시장도 삼성전자가 디지털TV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98년 이후 변화되기 시작해 현재는 우리가 일본 등 전통 강호를 제치고 고급 디지털TV 제품군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월드컵으로 친다면 이제서야 원정경기에서 첫 승을 거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앞으로도 시장 흐름을 더욱 정확히 예측하고 과감한 R&D 투자를 통해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시장을 이끌 수 있는 ‘절대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디지털TV 월드컵’의 ‘유일강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한 회사의 실력을 키우는 것에서 더 나아가 기술 발전에 대응해 통신·방송 융합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뒤따라야 하고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노사관계 선진화 등 기업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월드컵에서 선수 개인의 기초체력이나 개인기뿐만 아니라 협회의 지원, 국민의 전폭적인 성원 없이는 결코 우승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gschoi@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