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4일 시카고 컵스(미 프로야구팀)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 1회 말 1사 주자 2·3루 상황인 가운데 4번 타자 새미 소사가 타석에 들어섰다. 야구 사랑과 열정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시카고 관중이 적잖이 흥분했다. 소사가 2003년 4월 시즌(메이저리그)을 시작한 뒤 2개월여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홈런을 6개밖에 치지 못했지만, 그에겐 이미 505개를 담장 너머로 날려보낸 저력이 있었기 때문. 그의 홈런 한 방이면 3점이 될 테고, 경기 관람이 더욱 흥겨워질 터였다.
소사가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빗맞은 탓에 방망이가 부러지며 공은 상대편인 템파베이 데블베이스 2루수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소사는 1루에서 아웃(out), 그 사이 3루 주자였던 마크 그루질라넥이 홈으로 들어와 1점을 냈다.
그런데 부러진 소사의 방망이가 문제였다. 포도주 마개로나 써야 할 코르크(cork)가 부러진 방망이에서 튕겨져 나온 것. 야구 방망이 끝 부분 한가운데에 작은 구멍을 내고 코르크를 채우면 이른바 ‘코르크 방망이’다. 나무를 파내 무게가 가벼운데다 코르크 반발력을 더해 그만큼 홈런 치기가 쉽다. 이건 반칙! 시카고 컵스의 득점은 취소됐고 소사는 꽤 오랫동안 야구장에 나오지 못했다.
소사의 야구 인생은 화려했다. 1989년 데뷔해 17시즌(년) 동안 홈런을 588개나 때렸다. 1998년에는 마크 맥과이어와 1세기에 한 번 나올 홈런 대결을 펼치며 최고 인기를 누렸다. 2003년에도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야구선수’로 뽑혀 펩시·마스터카드 등과 400만달러어치 광고계약을 했을 정도다. 그랬던 그에게서 코르크 방망이가 나오자 모든 게 의심스러워졌다. 홈런 500여개가 모두 코르크의 힘에 기대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를 믿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후 소사의 야구 인생은 우울했다.
소사가 레오넬 페르난데스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을 따라 우리나라에 온 지난달 29일∼7월 1일,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다시 연구실을 꾸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소사는 이제 거짓(코르크 방망이)을 쓰지 않는다. 황 박사도 더는 거짓을 쓰지 마시길.경제과학부·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