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IT·CT 기업의 업무 환경이 시골 판자촌 못지않은 곳이 있다니 실로 어이가 없다. 부산에서 첨단 시설과 장비를 자랑한다는 셈텀 벤처타운에서는 지난달부터 비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한 공사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지은 지 3년밖에 안 된 건물인데 물이 새는 공사만 벌써 세 번째라고 하니 부실공사를 한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에는 사무실에 쏟아진 빗물로 1000만원가량의 재산 피해를 본 입주 업체도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영도 멀티미디어지원센터는 업무 환경이 이보다 더 심각하다고 한다. 고양이가 집단 서식하고 있는데다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고 냉난방은 고사하고 환풍도 제대로 되지 않아 화장실에서 역한 냄새까지 풍긴다고 한다. 한마디로 충격적인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항구도시이자 광역시인 부산의 IT·CT 기업의 업무 환경이 이처럼 열악하다면 이들이 어떻게 부산을 대표하는 디지털 문화산업의 기수로 발전할 수 있을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30개사가 입주한 영도 멀터미디어지원센터는 건물이 낡아 입주기업 직원들은 구멍이 뚫린 천장 아래서 공용장비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싼 임대보증과 저렴한 관리비 때문에 입주했지만 열악한 환경 때문에 외부에 기업 위치를 제대로 알리는 걸 꺼린다고 한다. 지난 5월에는 5개 업체가 불법소프트웨어 단속에 걸려 수천만원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받아 기업 경영난까지 겹쳤다는 것이다.
업무 환경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이 지원센터 입주를 기피해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이 관할하는 4개 지원센터는 한때 공실률이 40%까지 육박했다고 한다. 공실률을 낮추기 위해 입주 조건을 완화했지만 가장 여건이 좋다는 센텀 벤처타운조차 300여평이 비어 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런 현실을 부산시와 부산정보산업진흥원 그리고 기업 간 견해차로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흥원 측은 개별 기업의 능력 부족을 탓하고 기업들은 지원책이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서로 네 탓을 하는 셈이다. 물론 양 측의 주장에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런 네 탓 주장이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보다는 각자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고 서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지혜를 모아야 열악한 업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지역마다 그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 색채가 있고 이를 미래 디지털 문화 콘덴츠산업으로 육성하려면 몇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지역 기업이 자신감을 갖고 지방 문화산업의 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업무 환경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빗물이 새고 악취가 풍기는 환경이라면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렵고 부산의 디지털 문화콘텐츠산업을 선도할 기업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안 그래도 부산 IT 경기는 바닥이라고 한다. 게임·애니메이션·솔루션·유무선 콘텐츠 할 것 없이 잘 나가는 업종이 없다는 것이다. 매출 10억원 이상의 기업이 전무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다 업무 환경까지 형편없다면 기업들이 의욕을 가지고 일할 수 없다. 환경개선을 위해 정책을 집중하고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둘째, 기업 간 경쟁과 차별화를 통해 지역특성화를 이룩해야 한다. 특히 지방과 중앙을 연계해 지역 기업이 자생할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다양성을 바탕으로 그 나름대로 독창성을 발휘하는 IT·CT기업들이 등장할 것이다. 셋째, 수시로 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넷째, 기업들도 모든 것을 지원 기관에 의존만 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행정력과 예산을 지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기업들이 스스로 창의력을 바탕으로 기술개발에 주력해 기업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는 부산 지역의 IT·CT 기업은 열악한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