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 화두로 떠오른 지는 오래다. 상생(相生)이라는 용어를 누가 생각해냈는지 몰라도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동안 납품받는 대기업과 공급하는 중소기업 간 거래관계에는 공급망관리(SCM)라는 말이 주로 사용돼 왔다. SCM은 따지고 보면 살벌한 뜻이다. 거래관계를 생태계의 먹이사슬 구조로 보고 있다. 먹이사슬이란 먹고 먹히는 관계다. 상생은 납품처와 공급처 간의 역학구조를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 서로 윈윈하는 관계로 바꾸어 놓은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왜 ‘상생’인가 하는 점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생태계에서도 악어와 악어새처럼 서로 돕고 살아가는 구조가 있다. 이를 두고 ‘공생(共生)’이라고 부른다. 대·중소기업 협력을 공생이 아닌 상생이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듯하다. 공생관계란 천적관계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공생관계일 뿐 천적관계로 변하지는 않는다. 상생이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공생과는 다르다. 적으로 삼을 것인지, 공생관계로 삼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의지가 개입돼 있는 것이다. 물론 선택과 의지의 주체는 강자의 몫이다. 약자는 수동적으로 선택될 뿐이다.
대·중소기업 상생이란 결국 강자(대기업)가 약자(중소기업)를 상생의 파트너로 삼을 것인지, 그렇다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기에 정부가 개입해 강자의 선택을 독려하고 때로는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대기업도 경쟁의 개념이 옛날과 달라져 자발적인 의지로 상생에 적극 나서기도 한다. 과거에는 같은 업종끼리만 경쟁했지만 요즘은 모든 업계 간에 경쟁이 이루어진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잠재적 경쟁자까지 고려해야 하는 전투를 치러야 하는만큼 거래관계에 있는 가까운 협력사부터 원군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강자의 선택에 의한 상생관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상생 여부가 강자의 선택에 달려 있는 이상 공생처럼 항존할 수는 없다. 선택되지 못하면 곧 죽음이다. 경쟁자 중 한쪽은 선택되고 한쪽은 배제됐다면 그 경쟁은 하나마나다. 그래서 아무리 상생이 좋다 하더라도 자생(自生)보다는 못하다. 상생협력이라는 큰 물줄기가 도도히 흐르고 있지만 그래도 “중소기업이여 자생하라”고 외치고 싶다. 누구는 자생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느냐며 철없는 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대기업이 철저히 협력사만으로 상생의 울타리를 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백번 옳은 말이다.
자생하려면 힘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거대한 대기업과 힘의 균형을 맞추려면 비장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에 그 비장의 무기란 ‘우리 것이 아니면 안 되는 기술이나 제품’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쟁사가 많아 골치 아픈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중소기업에 유아독존의 카드가 없으면 자생을 포기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상생의 울타리 안에서 생존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비장의 카드를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 경쟁자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면 된다. 그제 반도체 테스트하우스 1위 업체인 아이테스트가 2위 업체인 프로테스트를 인수합병했다. 합병의 시너지를 따지기 전에 대기업은 이 합병회사와 어쩔 수 없이 거래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선택의 폭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아직도 아이테스트-프로테스트와 같은 경쟁구조에 있는 수많은 중소 벤처기업이 있다. 중소 벤처기업 스스로 선택의 폭을 줄여버리는 것도 자생의 한 방법이다. 대기업만 상생협력을 하라는 법이 없다. 중소 벤처기업끼리도 얼마든지 상생협력할 수 있다. 대기업에 의한 상생협력도 좋지만 중소 벤처기업이 상생협력해 자생하는 바람이 함께 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소 벤처업계의 용기와 결단이 절실하다.
유성호논설위원@전자신문, sh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