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 민간대표로서 2001년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후 북한 측은 IMT2000 서비스를 준비중인 일본 NTT도코모의 의뢰로 무선 인터넷용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 회사에 공동 개발 의사를 타진해 온 적이 있다. 당시 개발상황 등 설명을 들어보니 기술이 상당 수준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북한은 산업적 측면에서 오래 전부터 IT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 자본이 소요되는 하드웨어 부문의 육성보다 우수한 기술 인력을 바탕으로 한 소프트웨어 산업 부문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보통신은 현대사회에서 국가경쟁력 제고와 경제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1순위 기술 분야고 이는 북한에서도 예외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러한 정보통신산업 육성 노력은 대중의 정보 접근성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폐쇄국가 북한을 정보화 사회로 이끌어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항은 현재 북한이 가진 체제적·구조적 한계다. 즉 북한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체제 유지를 우선시할 것이고 이를 위해 인터넷을 포함한 정보화를 대중적으로 확산하지 않고 전문 인력에 한정하며, 정보기술의 발전을 적극 도모하되 사회 전반의 정보화는 차단하는 분리정책을 취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더는 전제적인 정치가 불가능한 것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의 사회구조가 정보화 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특정계층의 정보독점이 불가능하므로 정보화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만 이룩될 수 있는 구조적 메커니즘이다.” 이는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졌던 강연에서 한 말인데, 민주화와 개방화는 정치적 투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가 개방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가능함을 역설한 것이다. 전문가들이 구 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의 붕괴 원인으로 정치적인 요소보다 이 같은 사회 구조적인 변화의 작용이 더 크다고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정보의 빠르고 유용한 분배로 사회의 ‘중심’보다는 ‘주변’이 강조되는 컴퓨터 네트워크의 속성, 기술의 발달은 대중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정보화와 더불어 발전할 수밖에 없는 속성 등을 감안할 때 정보통신산업의 발전과 정보화의 분리는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불가능해진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 역시 정보산업이 발전할수록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사회 전반의 정보화와 개방적 구조체계로의 변화가 촉진될 것이고, 중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처럼 자연스럽게 시장경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냉각되고,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 경제협력사업도 또다시 먹구름 속에 휩싸이게 됐다. 내부적으로는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이 재연되고 있고 한·미·일 역학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무엇보다 한반도 위기국면에 전적인 책임이 있는 북한은 일방적인 지원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미사일 발사로 인해 발생한 현재의 긴장 상황을 결자해지하고 6자 회담 복귀를 천명해야 한다. 미사일 발사 당일 잠깐 동요하다 이내 정상을 되찾은 증시처럼 우리 또한 남북한 정보통신 기술 및 인프라 교류와 관련해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정보통신 협력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중장기적인 플랜이 요구된다. 상호 연결성과 개방성을 함의하는 정보화의 물결이 세계 유일의 폐쇄국가의 장벽을 소리없이 그러나 강하게 무너뜨릴 것에 대비한 지혜롭고 미래지향적인 IT 교류정책이 다른 어느 때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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