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재앙의 뒤편

 집중호우가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남은 것은 수재민의 상심과 복구의 땀방울이다. 이사를 한번 해도 정리해야 할 것이 산더미인데, 앞으로 수재민의 복구가 걱정이다. 물난리는 해마다 겪는 행사가 됐다. ‘기상관측 이후 최대’라는 말은 충격적이지도 않다. 너무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또 내년 이맘때쯤 어떤 ‘최대, 최초’의 소리를 들어야 할지 TV방송의 특보에 가슴이 펄떡인다.

 요즘 태풍과 폭우는 도를 넘는다. 빈도도 잦다.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모든 것이 황폐화된다. 90년대 들어 잦아진 태풍과 폭우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기상이변’이라는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잊게 된다. 그리고 또 이듬해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된다. 태풍 ‘매미’가 안겨준 참혹한 기억은 지금까지 생생하다.

 해마다 당하는 재앙 뒤에는 언제나 천재(天災)와 인재(人災)의 ‘갑론을박’이 무성하다.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니 대처 결과를 두고 운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되고 있을지 모른다. 과학을 덕목으로 무자비하게 사용한 인위물질이 결국 화가 돼 돌아왔을 것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게 당연하다. 조심스럽게, 겸허하게 사는 사람에게 원수의 칼을 들이대는 사람은 없다. 무리한 자연파괴, 남획, 에너지 과소비가 나은 결과가 바로 자연의 재앙이다.

 뒤늦게 환경을 문제 삼아 ‘기후변화 협약’을 만드는 등 뒷북을 치지만, 구멍 뚫린 자연은 용서하지 않는다. 그것도 우습다. 선진국이 먼저 개발해 실컷 써 놓고 이제 와서 개도국의 목을 죈다. 더는 쓰지 말라고 억누른다. 자연을 가장 먼저 파괴한 것도 선진국이요, 보호에 나서는 것도 선진국이다. 그 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개도국이다. 힘의 ‘아이러니’다.

 자연의 재앙은 기술·자원·재원 유무와 상관없다. 어느 정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가진 능력 밖의 일이 대부분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징후를 깨달았다면 대책이 필요하다. 겸손함,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가장 우선한 대책일 것이다. 이번 폭우피해는 분명히 천재다. 하지만 천재 뒤에는 언제나 인재가 있기 마련이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