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시장이 무한경쟁체제에 들어선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그러나 요즘 통신시장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엊그제는 전국 103개 방송사업자가 기간통신망사업자 대열에 정식으로 합류했다. 인터넷 접속 역무에 한정되기는 했지만 방송사업자가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공식적으로 통신서비스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통신사업자들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다.
초고속인터넷 시장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성장가도를 달려온 곳이다. 경쟁도 치열하지만 그나마 통신계열 8개 사업자만이 아귀다툼을 벌이던 시장이다. 이런 시장에 비록 지역적 한계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한 손에 방송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쥔 103개 사업자가 새로 참여해 공격적으로 영업에 나설 경우 고객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통신·방송 어느 사업자건 생존을 위한 무한 서비스 경쟁을 벌여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위기의 통신시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여기뿐만이 아니다. 요즘 통신사업자를 위협하고 있는 또 하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자가통신설비, 즉 자가통신망 확대 문제다. 전기통신기본법에 기간통신사업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사업용 전기통신설비와 달리 자가통신망은 누구든지 일정한 요건만 갖춰 신고하면 설치,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건설교통부를 비롯한 정부부처는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이 자체 통신망 운용을 통한 관리의 효율성과 예산절감을 이유로 들어 자가통신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그간 정보통신부에서 해 온 자가통신망 관리업무를 최근 각급 지자체로 이양하기로 결정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자가통신망 자치시대’가 곧 열릴 전망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보유하고 인터넷 강국이 된 데는 자가통신망 제도가 기여한 측면이 많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적지 않다. 초고속인터넷 시장이 지금처럼 무한 경쟁 상황이 된 근본요인 중 하나가 자가통신망 제도다. 한 때 공기업들의 자가통신망이 과잉 공급현상을 빚고, 국가 자원의 중복투자라는 문제가 발생하자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사업을 분리시켜 기간통신사업자로 허가해준 것이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자가통신망 제도가 공기업들의 사업다각화 및 통신사업 진출 수단으로 악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통신사업자들로서는 자가통신망 확대를 그냥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다. 통신사업자들이 요즘 중복투자 등 자가통신망 구축에 따른 폐해를 조목조목 들어 제도개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통신사업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이 틀린 것도 없다. 전국을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한 통신망이 모자라는 상황도 아니다. 현재 자가통신망을 구축하고자 하는 기관이 충분히 사용하고도 남을 정도다. 또 공공기관 등의 자가통신망 구축 확대는 통신사업자의 망 고도화 투자를 억제해 오히려 BcN·IPTV와 같은 미래 서비스 활성화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지자체가 설치한 자가통신망을 자체 관리, 감독하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흔히 통신산업을 규제산업이라고 한다. 정부가 어느 정도는 시장에서 ‘보이는 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프 백작’이 말해주듯 통신산업은 국가존립 및 사회 질서 유지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공공기관도 단순한 비용 절감효과보다 국가 정보통신 발전을 생각해야 한다.
윤원창수석논설위원@전자신문, wc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