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텔레콤’과 ‘남용사장’은 동격이었다. 업계에서는 이미 ‘남용의 LG텔레콤’이라고 부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10년전 자본력과 주파수에서 경쟁사들에 비해 핸디캡을 안고 출범했던 LG텔레콤이 각종 경영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스스로 ‘생존기반’이라 부르던 가입자 600만 고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올해도 LG텔레콤은 경쟁사가 모방할 수 없는 요금제와 기분존 2, 3탄 등 이른바 생활 가치혁신형 서비스를 내놓을 참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대표이사 면직’ 법 조항 때문에 하루 아침에 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래서 아직 그의 머리 속에는 LG텔레콤의 가야할 길에 대한 그림이 남아 있을터. 아쉬움과 원망이 교차할 법하다. 전자신문은 20일 남용 사장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동기식 IMT2000사업 허가 취소 이후 첫 언론 인터뷰다. 평소 그는 자신감으로 차 있었으나 이날은 굳게 다문 입술로 “죄송하다”는 말을 되뇌였다. 그는 “LG텔레콤은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첫 운을 땠다.
-갑자기 CEO에서 물러나게 됐다. 지금 소회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다. 당분간 등산도 하고 쉬고 싶다.
- 허가 취소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정통부에서 무리한 결정을 한 것은 아닌가?
▲아니다. 아쉬움은 없다. 정통부는 장·차관부터 국장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초점이 옮겨가지 않았으면 한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간의 통신 정책을 되돌아보고 나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주변에서는 대표 자동 면직 조항을 뒤늦게 알아서 미처 대처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언제 알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리 알았더라도 법 조항을 바꿀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앞으로 LG그룹의 통신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역시 그룹에서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룹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단 생각이 든다. 그룹에서는 나를 믿고 통신사업에 뛰어들었다. 갑자기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 것은 LG그룹 측면에서 보면 당황스러운 일이다.
-통신 부문 부회장 등 LG그룹 내 통신사업을 지휘할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 그룹에서 판단할 문제다. 부담감을 빨리 벗고 싶다.
-LG텔레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LG텔레콤은 좋은 기업까지는 아직 아닌 것 같다. 이제 “망하진 않겠다”고 알아주는 정도다. 아직도 가입자·품질·시가총액 면에서 갈 길이 멀다. 미래 시장도 녹녹치 않다. 고객 중심의 가치혁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 나는 떠나더라도 회사 내 각 층에서 리더들이 잘 개발돼 있어 걱정은 없다.
-LG텔레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후계 구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어떤 사람이 LG텔레콤을 이끌어가야한다고 생각하나?
▲LG텔레콤은 그동안 혁신 시스템을 잘 만들어 왔다. 부사장급 이상은 그룹 차원에서 검증 시스템이 있다. 누가 하더라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당국에 제안할 게 있다면.
▲규제정책은 이제 주파수와 기술을 분리해서 펴야 한다. 기술은 맘대로 쓰게 하고 주파수는 필요할 때 사용하게 하면 된다. 합리적인 방법은 주파수를 정부가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하면 주고 회수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주파수 정책은 체계적이고 명확히 해야 한다.
-CEO 재직중 가장 보람된 일은 무엇이었나.
▲그동안 가치혁신을 만들어 왔다. 뱅크온·기분존 등을 경쟁사에서는 노이즈 마케팅이라 하지만 LGT는 레벨3(한 번 보면 간절히 구입하고 싶어하는 수준의 가치 제공)를 어떻게 찾을 것 인가하는 것이었다. 자랑스럽다. 이 만큼은 시장에서 큰 폭발력 있었다.
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
사진=윤성혁기자@전자신문, sh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