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교육인증제도가 겉돌고 있다. 이공계 대학이 일제히 ‘교육 혁신’을 주창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공학교육인증제도는 대학의 관심 부족과 정부 지원 부족이 겹치면서 헛바퀴만 굴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을 목표로 추진중인 국제공학교육인증협약(워싱턴어코드) 가입이 성사되더라도 역시 ‘빈수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99년 8월 30일. 국내 대학의 공학 교육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공학교육인증원(ABEEK)이 설립됐다. 현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이 초대 원장을 맡았고 한국공학교육학회·전국공과대학장협의회 등이 참여했다. 이듬해 교육부를 통해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ABEEK가 이달 말 개원 7주년을 맞는다. 7년이라는 기간이 흘렀지만 국내 공학교육인증제도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난해 말까지 전체 145개 공과대학 중 19곳만이 참여해 현재 인증률은 1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올해 4개 대학이 새로이 신청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인증률은 15.9%에 불과하다. 2개 대학이 신청한 지난 2001년에 비해 늘어나기는 했지만 증가 폭이 크지 않아 현재로서는 대학권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그나마 올 초에는 인증평가에 대한 불신으로 인증프로그램을 신청했다가 이를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 열악한 인증제도의 현 주소를 드러내기도 했다.
서울대 공과대학은 올해 처음으로 학부별로 인증을 신청했으나 이 가운데 전기공학부가 뚜렷한 이유 없이 도중 하차했다. ABEEK 관계자는 “인증평가 등에 대한 이견 등이 신청 취소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이공계 대학은 지난 수년간 △교육과정 고착화 △산업별 맞춤인재 양성 미흡 △우수 인재 지원 미비 등 안팎의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혁신을 꾀했으나 아직 내부의 외침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교육인증을 통해 혁신 성과를 대외적으로 입증해야 하지만 이를 위해 교육과정은 물론이고 교수 및 학생들의 자질까지 끌어올리는 작업이 만만치 않아 인증 신청률이 낮다.
대부분 대학이 논문 등을 교수평가의 잣대로 삼는 것도 문제다. 오랜 시간 공들여 공학교육인증을 받기보다는 논문 몇 편 더 발표하는 것이 학교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는 현실이다.
올해 들어 뒤늦게 교육인증을 신청한 A대 관계자는 “인증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별다른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학교 교육과정 근간을 바꾸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고 신청 지연 배경을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미국·영국·일본 등 10개국 간 공학교육인증협약인 ‘워싱턴어코드(WA)’ 가입을 추진중이다. 한국은 아직 WA정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 공대 졸업생들은 미국 등 이른바 기술 강대국에서 기술사를 비롯한 공학 관련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내 인증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아 내년 WA 정식 가입도 불확실하며, 설사 가입에 성공하더라도 실효가 크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ABEEK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우영 고려대 교수는 “WA 정회원 승격 심사에는 그 나라의 인증제도 활성화 여부도 영향을 미친다”며 “국내 공학인력이 해외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선 인증제도 확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호준기자@전자신문, new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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