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애령씨의 상담 에세이 ‘희망의 선택’에 나오는 얘기다. 한 젊은 딸이 어머니에게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푸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냄비 세 개에 물을 채웠다. 첫 번째 냄비에는 당근을 넣고, 두 번째 냄비에는 달걀을 넣고, 세 번째 냄비에는 커피를 넣었다.
어머니는 냄비 세 개를 불 위에 얹고 끓였다. 시간이 지난 후 불을 끄고 어머니는 딸에게 냄비에 들어 있는 당근을 꺼내 만져보라고 했다. 당근은 부드럽고 물렁거렸다. 그 다음 달걀의 껍데기를 벗겨보라고 했다. 달걀은 익어서 단단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커피 향내를 맡고 맛을 보라고 시켰다.
어머니는 설명했다. “이 세 가지 사물이 다 역경에 처하게 됐다. 끓는 물이 바로 그 역경이지. 하지만 세 물질은 전부 다 다르게 반응했단다. 당근은 단단하고 단호했지만 끓는 물과 만난 후 부드러워지고 약해졌어. 달걀은 껍데기가 너무 얇아서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보호하지 못했어. 그러나 끓는 물을 견디어내면서 그 안이 단단해졌지. 그런데 커피는 독특해. 커피는 끓는 물에 들어간 다음에 물을 변화시켜 버린 거야.”
그리고 어머니는 딸에게 물었다. “너는 당근이니, 달걀이니, 커피니?”
당근은 강해 보이지만 고통과 역경을 거치면서 시들고 약해졌다. 달걀은 유동적인 정신을 가졌지만 시련을 겪으면서 단단해지고 무디어졌다. 껍데기는 같지만 부드러움을 잃어버린 채 심장은 굳어버렸다. 그러나 커피는 고통을 겪으면서 고통의 환경 자체를 바꿔버렸다. 고통을 부드러운 맛과 은은한 향기로 변화시켰다.
정치·경제의 혼란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대립각을 세웠던 참여정부 초기의 강한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삶은 당근처럼 물렁해지고 약해졌다. 판로가 없는 기업과 노동계 파업은 삶은 달걀처럼 경제의 심장을 굳어버리게 했다. 그 여파로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있다. 서민 경제는 부동산의 ‘세금폭탄’ 역효과로 향이 사라진 지 오래다.
다스림의 최고 선은 ‘있는 듯, 없는 듯이 편안하고 고요한 작은 정부’다. 강한 것보다는 서민의 고통을 커피향의 풍미로 바꿔줄 수 있는 것이 ‘최고 선’이다. 지금부터라도 냄비에 물을 붓고 커피를 끓이자.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