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월드컵 열기는 대단하다. 누구도 생각 못한 길거리 응원은 축구 본고장마저 놀라게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의 길거리 응원과 ‘꿈*은 이루어진다’는 강렬한 메시지는 세계 축구사에 남을 또 하나의 신화다. 2006년 독일월드컵은 한국의 길거리 응원을 고스란히 계승했다. 한국은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이 벌써 기다려진다. 그때는 꿈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우리는 왜 월드컵에 열광하는가. 우리가 그만큼 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K리그는 외면받고 있다. 팬들의 사랑이라면 프로축구보다 야구나 농구가 오히려 더 나을 것이다. 지금껏 이 의문을 누구도 속시원히 풀지 못했다. 대답은 생각외로 간단하다. 우리의 입신양명(立身揚名) 사상, 요샛말로 하면 스타 동경 사상이다. 사실 스타 동경 사상은 우리만의 전통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팽배해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에서 더 발달돼 있다. 영화·프로축구·프로골프·프로야구, 심지어 CEO까지도 스타들이 판을 치는 곳이다.
하지만 구미와 우리는 차이가 있다. 구미에서는 크든 작든 분야별로 스타가 존경받는다. 우리의 스타는 다르다. 일단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전문성보다는 얼마나 큰물이냐가 스타를 판가름하는 준거다. 여기서 큰물이란 ‘세계적인’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곳이다. 예전엔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낸다 했다. 국민의 안목이 넓어진 지금에는 서울이 아니라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자질을 지녔어도 작은물에서 놀 때에는 스타로 인정받기 힘들다. 박세리·김미연·최경주·박지성 등 국내에서 활동할 때와 큰물에서 활동할 때 현격하게 대접이 달라진 예는 수없이 많다.
우리가 평소 K리그에는 관심이 없다가 월드컵에 열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사대주의나 편협한 민족주의라고 폄하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 국민은 현명하다. 한국이 작은물이라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국토나 인구나 시장이 우리가 큰물이라고 하는 곳에 비해 10분의 1 정도도 안 된다. 미국이나 유럽연합은 자체가 큰물이어서 내부에서 인정받더라도 월드스타로 손색이 없다. 규모와 현실을 무시한 채 우리 것을 최고라고 부르짖는 것이 오히려 민족주의에 가깝다.
한시바삐 한국을 큰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대표선수들이 원정(遠征)의 불리함을 덜 수 있다. 밖에서 싸울 때는 안에서보다 몇 배나 힘들다. 큰물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월드컵도 세계축구연맹(FIFA)이라는 곳이 있어야 비로소 존재한다. 박세리의 LPGA도, 최경주의 PGA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껏 큰물에서 놀아 보거나 구경한 경험은 있어도 직접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이제서야 큰물을 만들어 보려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것이다. 우리 시장을 미국의 안방으로 내주고, 대신 미국시장을 우리의 안방처럼 만들려 한다. 우리가 만들려는 경제월드컵에는 기업들이 대표선수다. 우리 대표선수들이 과연 좋은 성적을 낼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큰물에서 놀아본 쪽은 그래도 덜하다. 구경만 했거나 구경조차 제대로 못한 쪽에서는 공포스러워하고 있다. KLPGA의 영광을 뒤로한 채 혈혈단신 LPGA로 향하던 박세리의 심정이 그러했으리라. 무섭다고, 두렵다고 경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깨지고 터지더라도 큰물에 도전해야만 국민은 열광하고, 선수는 스타로 대접받을 수 있다. 경제월드컵을 포기하는 것은 선수 스스로 기회는 물론이고 국민의 꿈마저 앗아가는 꼴이다.
유성호 논설위원@전자신문, sh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