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는 지난 84년 통신사업자인 브리티시텔레컴(BT)을 민영화하면서 ‘황금주(黃金株)’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정부 보유 지분을 팔면서 단 한 주만을 갖기로 한 것. 의결권 없는 1파운드짜리 주식이었지만 특정인이 BT 지분을 15% 이상 매집하지 못하도록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관선이사 2명을 선임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줬다. 이 제도는 특정 외국 자본이나 대주주가 BT 주식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둔 것이었다.
영국 BT의 도입 이후 유럽 각국이 연이어 황금주 제도를 도입했다. 포르투갈텔레콤(포르투갈),이베리아항공·텔레포니카(스페인),TNT·KPN(네덜란드) 등이 통신·가스·운송사업의 경영권 보호 차원에서 황금주 제도를 채택했다.
일본은 올해 3월 황금주 제도를 도입했다. 도쿄증권거래소가 상장 규칙을 개정해 상장 기업들이 주주총회에서 특정 주주에게 거부권을 주는 황금주를 조건부로 허용한 것. 다만 과도한 방어책을 도입한 상장기업에는 6개월 이내 개정토록 했고 개정하지 않으면 상장 폐지조치를 내릴 수 있게 했다.
사실 황금주 제도는 도입을 둘러싸고 각국에서 많은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외국 자본의 경영권 장악을 막고 경영의 안정성을 위해 황금주의 유지 및 확산이 필요하다는 자본의 논리와 ‘1주 1 의결권’을 지향하는 증권자본주의의 이념에 배치되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한다는 반대진영 논리가 맞서고 있다. 이미 EU집행위는 회원국에 황금주 폐지를 요청한 상태다. 황금주 제도를 처음 도입한 BT를 비롯해 KPN·텔레포니카 등이 지금은 이 제도를 폐지했거나 폐지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또 다시 황금주 도입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6월 법무부가 상법을 개정해 비상장 벤처기업과 공기업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거부권주를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황금주 논란에 불씨를 댕겼다. 지난주에는 권오규 부총리가 ‘기업환경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황금주 제도 도입 등 기업경영권 방어책에 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고, 오해진 열린우리당 서민경제추진위원장 역시 이 제도의 도입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이 특정 대주주의 지배권 강화를 우려해 완강히 반대하고 있어 실제 도입 여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경제과학부·장길수부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