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또 한 번 놀라운 뉴스를 들었다. 간혹 소음 문제로 시비가 붙는다는 뉴스가 나오곤 하지만 이번엔 이웃 간 아파트 소음 문제로 시작된 다툼이 죽음을 불렀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뉴스였다. 이젠 이웃사촌이란 말을 캡슐에 담아 깊은 땅속에 묻어야 하는가. 순전히 무더운 날씨 때문이라며 탓하고 싶어진다.
지난 7월 지방을 중심으로 지능형 홈네트워크 시스템이 구축된 아파트를 돌며 페트롤 조사를 했다. 2003년에 혁신적인 국가 10대 신성장동력산업의 하나로 지능형 홈네트워크 산업을 포함시키면서 지금까지 이 분야 연구개발 및 시범사업에 산·학·연·관 할 것 없이 수천억원을 투입했다. 이번 조사의 목적은 지능형 홈네트워크 기술이 주거환경에 어떠한 모습으로 스며들고 있는지, 그 정도와 내용에 맞는 처방전을 찾고자 하는 것이었다.
집단 공동주택인 아파트 주거 형태의 주택문화가 우리 땅에 자리잡게 된 지 이제 겨우 40년이 조금 넘었다는 것과 우리 조상들의 주거문화 핵심은 담과 대문, 마당과 동네, 일과 품앗이 문화였다는 두 가지 기본 프레임과 현재 지능형 홈네트워크가 구축된 아파트 주거환경을 이어줄 수 있는 고리를 찾고자 마음먹었다.
전반적인 조사를 통해 알아낸 첫 번째 고리는 지능형 홈네트워크의 기능과 서비스 가운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월 패드의 영상통화 기능이다. 두 번째 고리는 월 패드 정보기록 기능, 세 번째는 화장실 비상호출 시스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번째 고리인 영상통화는 단절된 이웃사촌의 전통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두 번째 고리인 정보기록은 홈 블랙박스 기능을 함으로써 사회안전망 구축과 범죄 예방 및 해결의 단초 역할 가능성을, 세 번째 고리인 비상호출 시스템은 노약자의 화장실 응급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가정 지키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청주 어느 아파트에 거주하는 50대 초반 아날로그 세대의 이용 사례를 들으면서 단절된 이웃사촌 문화를 지능형 홈네트워크를 통해 되살리는 시나리오를 풀어봤다. 우선 디지털기기에 친숙한 아이들로부터 시작된다. 아이들이 게시판에 ‘친구 사귀기’ 내용을 띄우고 서로 영상통화로 인사한다. 아이들이 친구가 되면 엄마들이 만난다. 이어서 엄마들의 소개나 기타 상황에 따라 아빠들이 서로 영상통화로 인사를 한다.
이로써 단지내외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론 서로 집으로 초청해 음식과 대화를 나눈다. 이런 시나리오가 꿈이 아니다. 지능형 홈네트워크가 댁내에 구축되면서 회색빛 콘크리트로 단절된 이웃을 사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고리도 그간 아파트 문화로 단절된 담과 대문, 마당과 동네, 일과 품앗이 문화를 지능형 홈네트워크를 통해 복원할 수 있는 연결의 끈이 될 수 있다는 대단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지능형 홈네트워크가 주거환경에 스며들어 진정한 우리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제 너무 IT 중심으로만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빠른 고도성장 및 고도 산업화 과정에서 변질되고 왜곡돼 버린 우리 문화를 지능형 홈네트워크 기술을 통해 복원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보면 올바른 문화유산답사를 위해서는 그 땅의 성격, 즉 자연지리를 알아야 하고 그 땅의 역사, 즉 역사지리를 알아야 한다. 또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 즉 인문지리를 알아야 한다. 이런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답사는 곧 ‘문화지리’라는 성격을 갖는다고 쓰여 있다.
지능형 홈네트워크 산업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우리 주거환경·문화에서 지능형 홈네트워크의 기능과 서비스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엔지니어들만의 모임이 아닌 거주자들이 참여하는 모임도 동시에 활성화돼야 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아담하고 정 넘치는 주거문화를 IT 첨단기술인 지능형 홈네트워크 기술을 빌려 찾아나서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지능형 홈네트워크 산업이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임상채 IBS코리아 사무국장·서울산업대 건축학부 겸임교수 ibslims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