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
2006년 한여름을 지나는 국내 중소 휴대폰 업계의 현주소다.
브이케이 부도 이후 휴대폰 산업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을 뿐 아니라 금융권의 여신 회수 움직임은 경영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중소 휴대폰 업계는 이제 희망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중견·중소 휴대폰 기업들은 하나로 뭉치고 있을 뿐 아니라 저가에서부터 3세대 WCDMA 단말기까지 풀라인업을 갖춰 중국 기업과의 확실한 차별점도 갖췄다.
중견 휴대폰 기업의 맏형격인 양기곤 벨웨이브 사장을 비롯해 김현 스카이스프링앤비텔컴, 김종근 테크노모바일 사장과 마주앉았다.
◇적과의 동침, 색다른 실험=휴대폰 산업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그동안 해외 시장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여 왔던 기업들이 ‘적’과 ‘동지’를 넘나드는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주인공은 양기곤 벨웨이브 사장, 김현 스카이스프링앤비텔컴 사장, 홍종원 뉴젠텔레콤 사장. 이들 3명의 CEO는 최근 각사의 휴대폰 제조원가를 서로 공개하고, 중장기적으로 범용 부품은 공동으로 구매하기로 했다. 특히 벨웨이브의 중국 GSM 휴대폰 필드테스트 기지 및 생산라인까지 공동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김현 스카이스프링앤비텔컴 사장은 “벨웨이브의 중국 공장에서 단말기를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며 “선양에 위치한 벨웨이브 휴대폰 연구개발(R&D) 단지를 통한 필드테스트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수출 시장 개척 과정에서의 협력도 추진된다. 가령 한 회사가 보유하지 않는 스펙의 단말기를 요구하는 바이어에 대해선 나머지 두 회사 제품을 추천해 주는 이른바 ‘대리 영업’도 전개될 수 있다.
◇큰 파도는 넘었다=이들 3인의 CEO는 브이케이 부도 이후 금융권의 인식이 나빠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토종자본으로 설립된 국내 중소 휴대폰 기업들은 벼랑 끝에 몰려 있는 반면에 중국 및 대만계 자본을 유치한 기업들은 소위 잘 나가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김종근 테크노모바일 사장은 “브이케이 부도 이후 일부 기업은 소낙비만 피해 가자고 잔뜩 움츠려 있다”며 현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CEO는 큰 위기는 일단 넘겼다는 판단이다. 경영실적 개선을 위한 고무적인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기회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양기곤 사장은 최근 이탈리아 모 업체에서 830만달러 규모의 투자유치에 성공했고, 스카이스프링앤비텔컴 역시 오는 9월부터 스페인 텔레포니카에 3세대 UMTS폰을 공급하게 됐다. 특히 벨웨이브는 오는 11월 중국 시장 재진입을 시도할 예정이다.
◇국내 중소 휴대폰 업계에 필요한 것=국내 휴대폰 산업의 현주소와 관련, 대기업 위주의 정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중소기업을 배출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이들은 인식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책이 아쉽다는 것이다.
팍스콤·컴팔·아리마 등 대만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예로 들었다.
양기곤 사장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가는 길이 다르다.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면서 “한국의 모든 중소기업들이 독자 브랜드라는 우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및 정부의 역할에 대한 주문도 이어졌다.
김현 사장은 ”휴대폰 산업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선 부품 업체 지원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며“또 인력 풀 구성을 통해 연구개발 인력들의 생계형 이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원석기자@전자신문, stone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