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의 인프라로 각광받았던 차세대인터넷주소체계(IPv6) 도입이 KT를 비롯한 통신사업자들의 미온적인 태도로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부터는 유선사업자들이, 올해부터는 이동통신사업자들이 각각 IPv6 상용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었지만 모두 당장 돈이 되지 않는 분야에 투자하기 어렵다며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KT와 SK텔레콤은 당초 지난 6월 와이브로 상용서비스에서 처음 IPv6를 구현함으로써 향후 본격적인 확산의 기폭제를 마련할 예정이었으나 실제 상용화에서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렸다.
전문가들은 IPv6가 향후 다가올 유무선 ‘All IP’ 환경의 근간이자 인터넷 주소자원 문제를 해결할 대세인데다 국내 통신장비 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KT 등 통신사업자들이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목에서 ‘무관심’으로=IPv6는 지난 2003년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 재직 시절 IT839 전략의 3대 인프라로 꼽힐 만큼 국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인터넷 주소자원의 수요와 올 IP 네트워크 환경, 국내 장비업계의 기술력 확보 등 모든 측면에서 IPv6 조기 도입의 필요성이 대두됐던 것.
이에 따라 당시 민·관 차원에서 ‘IPv6 전략협의회’를 구성하고 5개년 계획을 수립, 2007년까지 모두 1885억원을 투입해 IPv6 환경에 적극 대비한다고 선언했다. 정통부 역시 오는 2010년까지는 국내의 모든 네트워크 환경을 IPv6로 전환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현재 진척되는 속도를 보면 요원하기만 하다. KT도 지난해 “오는 2008년부터 기간망·가입자망 등 모든 네트워크를 IPv6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내부적으로 이를 4년가량 다시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지난 6월 와이브로 상용서비스에 IPv6를 구현키로 했던 것을 은근슬쩍 빼 버린 것도 사업자들의 미온적인 태도 탓이다.
이에 따라 정통부는 KT·데이콤 등 통신사업자들과 함께 대학·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시범’사업만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KT 관계자는 “일반 가입자를 대상으로 마땅하게 제공할 IPv6 서비스가 없다”면서 “당장 돈이 되지 않는데 무조건 투자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늦춰서는 안 된다’=하지만 정책당국이나 전문가들은 최근 답보상태에 빠진 IPv6에 대해 더 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통신사업자들이 점점 노후화되고 있는 네트워크 환경을 올 IP로 개선하는 등 망 고도화에 적극 나서야 할 상황에서 당장 돈 벌 궁리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보다 초고속 정보통신 환경이 뒤처졌던 미국 등 선진국의 사업자들도 최근에는 IPv6로 전면 전환하는 추세”라며 “사업자들이 근시안적인 태도에 머물 경우 미래에는 더 크게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올 연말께 출시 예정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세대 운용체계인 ‘윈도비스타’에는 IPv6가 기본 사양으로 탑재돼 내년에는 세계적으로 도입 움직임이 빨라질 전망이다.
한국전산원의 신상철 단장은 “내년에는 IPv6 도입을 둘러싼 여건이 한층 성숙될 것”이라며 “통신 사업자들 스스로 IPv6로 시장수요를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고민과 정책적 지원방안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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