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건국신화를 다룬 드라마 ‘주몽’이 인기다. 역사찾기의 방편으로 시작된 얘기가 극적인 요소를 더하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광활한 대륙을 점령하는 선조의 기상을 볼 수 있어 좋다. 드라마를 보는 많은 사람이 잊고 있던 선조의 기개와 역사를 되뇌이는 새로운 기회가 됐을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역사를 송두리째 빼앗기게 될 위기에 처한 우리 현실을 볼 때, 드라마 한 편이 가져다준 역사인식은 백 번의 주장과 수없는 강조보다 훨씬 강하다. 그것이 대중문화의 영향력이다.
주몽을 보면서 주요 줄기는 아니지만 강한 느낌을 주는 대목이 하나 있다. 부여의 무기가 한나라 철기군의 무기에 비해 턱없이 약한 철(鐵)이라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무기는 곧 국방력을 말한다. 어떤 무기를 가졌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혹자는 정신력을 운운하지만 월등한 무기 앞에서는 정신력도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여 왕의 숙원도 강철 개발임을 드라마에서 보여준다.
당시 강철은 강력한 무기이자 첨단 소재였다. 다루는 기술을 배우기도 어려웠다. 부러지지 않는 강철을 만드는 것은 철에서 탄소를 빼는 쉬운 작업이지만 당시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그 기술이 역사를 바꾸었다. 한나라만이 기술을 가짐으로써 주변국은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기술선점 효과가 곧 나라 간 지배구조를 바꿀 만한 혁명적인 일이었다.
비교하자면 강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첨단소재를 개발하기 위한 지금의 노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첨단 소재를 보유한 나라는 선진국으로 부를 누리고 있다.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부품이 필요하고 부품을 만드는 데는 또 소재가 필요하다. 결국 완제품보다 부가가치가 있는 것이 부품이고 부품보다 고부가가치 상품이 소재다. 여기에 더해 소재를 가진 나라가 배짱까지 부린다면 ‘소재의 무기화’는 그 옛날 한나라와 부여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완제품에서 부품으로, 부품에서 소재로 올라가다 보면 결국 미국·독일·일본 3개국이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3국이 불변의 선진국인 결정적 이유다. 선진국 진입을 목놓아 부르짖는 우리의 현실에서 소재 개발은 영원한 숙제이자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소재산업은 부를 끌어들이는 ‘블랙홀’이다.
디지털산업부·이경우 차장@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