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17일 43만의 미군과 다국적군 68만명이 이라크의 50여만 정규군과 50여만의 예비군, 15만 공화국 수비대와 쿠웨이트·이라크 남부 지역에서 전쟁을 벌였다. 이를 서방에서는 걸프전이라 하고 북녘에서는 만(灣)전쟁이라 부른다. 미국은 대공습을 단행한 이후 1개월간 하루 10만여회에 걸친 공중 폭격을 감행, 이라크 주요시설을 거의 파괴했으며 2월 24일에는 전면 지상작전을 전개,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축출한 뒤 2월 28일 전쟁종식을 선언했다. 이라크군은 42개 사단 중 41개 사단이 무력화되고 15만명의 사망자를 낸 끝에 패퇴했으나, 다국적군은 단지 125명의 전사자를 냈을 뿐이었다. 이 전쟁은 그동안 개발한 하이테크 병기의 실험장이었으며 텔레비전 중계로 여론을 호도한 전쟁, 제해권과 제공권을 넘는 전파 선제권이 승패를 가름한 최초의 전쟁이었다.
그렇다면 전파 선제권이란 무엇인가. 나는 걸프전 개전 다음날 KBS에 출연해 “현대전은 전파 선제권 확보가 승패를 결정하는 핵심요소다. 효과적인 전파교란이 이루어지는 30분 동안 선전포고, 레이더 망 교란, 파상공습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것이 성공하면 전쟁은 시작과 함께 종결되며 이후는 수습 차원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후 96년에는 저서에 전파 선제권이라는 말을 언급했으며 1998년에는 전파 선제권 확보를 위한 무기 체계 연구도 시도했다.
걸프전의 대표적 이미지는 몰래바이트(stealth) 기능을 가지는 두 가지 형태의 전투기와 전폭기에서 나타난다. 전파 선제권이란 이들 스텔스기가 수행하는 전투(F)와 폭격(B) 이전의 전파 흡수체에 의한 전파 교란과 능동적인 통신 마비로 대별된다. 폭격과 전투는 그 다음이다. 이 점에서 제공권과 근본적 차이를 지니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기 지령 신경망을 마비시킨 다음에 강력 전자기 펄스로 완전 절단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따라서 통신·컴퓨터·지령시스템(3C)을 불능에 가깝도록 전선과 부품을 태워 버리는 것이다.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파괴한 것은 봉화를 이용한 당시의 자동 경보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불능 상태로 만든 것에 해당한다. 호동 왕자는 전파 선제권을 기획한 최초 전술가일 것이다.
지금 전시 작통권 환수 문제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이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북녘의 군사행동을 미리 간파하고 3C 체계를 마비시킬 능력을 보유하고 있느냐’지 미군의 존재는 부차적이라는 점이다. 사전 마비 능력은 모두 전파무기와 관련돼 있다. 조기경보기·무인정찰기·원격탐사 위성 등 전파무기가 핵심사항인데 사실상 우리가 자주적으로 그 기술을 확보하고 운용할 이정표는 아직 없어 보인다. 그저 돈으로 환산해서 부담주체 문제로 한-미 간 핑퐁질만 해대는 것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자립기술이나 자주국방은 돈과 시간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녘의 핵기술, 미사일 제어기술, 60㎞ 장사정포 조준 기술에 대해 조기 탐사와 발사전 마비 수단을 우리 스스로가 보유해야 한다. 또 무기는 고철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고철 직전의 무기를 사다 놓고 우세한 기동 타격으로 발사와 동시에 몇분 내로 괴멸 운운하는 형국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서울에 북녘의 장사정포가 한 발이라도 떨어지면 우리는 초기대응에 실패할 공산이 크다. 이승만 정권 때 신승모 국방장관이 점심, 저녁 운운하더니 제일 먼저 꽁무니를 뺀 역사적 사실이 상기되기 때문이다. 북녘의 3대 위협 요소를 사전에 마비시킬 전파기술 확보가 전시 작통권의 핵심과제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이는 CDMA에서 벌어들인 10%만을 재투자하면 족하다. 그런 연후 북녘 사람들에게 스스로 포기토록 종용하면서 한편으로는 정보 실크로드와 정보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진용옥 경희대 전파공학과 교수 suraebong@naver.com
<>통일칼럼 필진이 오늘부터 바뀝니다. 오는 12월 말까지의 새 필진은 △진용옥 경희대학교 전파공학과 교수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이사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선임연구위원 △석호익 한국정보통신연구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