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발생 5주기를 불과 한 달 앞둔 지난 8월, 영국 히드로공항에서 여객기 테러 미수 사건이 일어나 전 세계는 또 한 번 테러 공포에 휩싸였다.
사망자 3000여명, 2000억달러의 경제적 피해. 9·11 테러로 무너진 월드트레이드센터가 있던 ‘그라운드 제로’에는 재건 작업이 시작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의 뇌리에는 5년 전 참사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9·11 테러 당시, 비행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충돌하면서 입주 기업들의 인프라는 건물 붕괴와 함께 파괴됐다. 정보 데이터도 소실됐다. 그런데 경악할 만한 참사 속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모건스탠리·메릴린치·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세계적인 금융회사가 사고가 난 지 단 몇 시간 만에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재개했다는 점이다. 금융회사들이 신속하게 영업을 정상화할 수 있었던 데는 주전산센터와 별도로 원격지에 구축한 ‘재해복구시스템(Disaster Recovery System)’이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1995년 일본 고베 지진 발발 당시, 복구체계가 전무했던 일본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건물 붕괴와 함께 주요 데이터를 유실해버렸고 이 때문에 몇몇 기업은 파산했거나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욱 대단한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9·11 테러와 같은 인적 사고는 물론이고 지난 여름 강원도에 큰 피해를 준 태풍처럼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 등 다양한 잠재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러한 재난재해의 피해는 단순히 기업 인프라 손실이나 비즈니스 활동 중단으로 인한 직접적인 매출 감소와 같은 물질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의 핵심 자산인 정보 데이터 유실로 장단기 사업 전략 수립 및 추진, 고객 서비스에 차질을 빚게 된다. 기업 신뢰도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정보를 얼마나 많이 축적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제는 손 안에 들어온 정보를 얼마나 잘 관리하고, 원하는 때에 이용할 수 있느냐가 기업의 IT 과제가 되고 있다. 미네소타대학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애가 발생했을 때 당일에 시스템 복구와 운용을 정상화하지 못하는 기업 중 약 25%는 즉각 도산하고, 40%는 2년 내에 도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 자산의 안전한 관리와 비즈니스 연속성 확보가 기업의 존립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9·11 테러를 기점으로 ‘비즈니스 연속성 확보’가 기업 전산의 화두로 떠오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내 주요 기업도 정보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기업의 비즈니스 중단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해복구시스템이나 BCP(Business Continuity Plan:업무연속성체계) 등 관련 IT 인프라 환경 도입에 나서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이중 삼중의 실시간 멀티 백업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이동통신업체는 가상으로 재해상황을 연출, 원격 백업센터를 주센터로 가동하고 변경된 데이터를 다시 주센터로 원상 복귀시키는 모의 재해복구 전환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재해복구 전환 훈련은 지난 2004년 국내 최대 규모 은행을 시작으로 금융권은 물론이고 제강·제조산업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반기 혹은 분기별로 정례화하는 사례도 많다. 내가 근무하는 한국EMC를 비롯해 대다수 스토리지 업체의 주요 영업활동이 재해복구시스템 구축으로 옮겨가고 있다.
위험은 항상 우리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발생한다. 기업들은 피할 수 없는 위기상황에도 끄떡없이 비즈니스 활동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고 적절한 IT 환경을 마련함으로써 기업의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9·11 테러를 돌아보며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격언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김경진 한국EMC 사장 kim_kevin@em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