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콘텐츠 식별체계` 불씨 없애야

 국무조정실이 1년 이상 끌어온 콘텐츠 식별체계 중복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문화관광부는 UCI를 국가단일 식별체계로 인정하는 대신 정보통신부는 COI의 특수성과 독립성을 인정키로 했다. 또 문화부와 정통부는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후속조치를 강구하기로 합의했다. 국무조정실의 이번 조치로 콘텐츠 식별체계 도입에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지난 1년 동안 일부 대형업체는 실패나 추가비용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식별체계를 도입했지만 대부분의 업체는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번 조정 결과를 보면 국무조정실이 재경부의 조정안을 최종안으로 수용하는 데 굳이 8개월의 기간을 허비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무조정실이 문화부와 정통부 간 중복 문제가 논란이 돼 콘텐츠 식별체계 조정에 나선 것은 1년 전인 지난해 8월이다. 국무조정실은 이후 지난해 11월 재정경제부의 검토를 요청했다. 재경부는 당시 정통부의 UCI 밑에서 문화부의 COI가 독자성을 유지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내고 조정안을 올 1월 국무조정실로 올렸다. 국무조정실의 이번 조정 내용을 보면 8개월 전 재경부가 마련했던 조정안과 차이가 없다. 물론 재경부의 조정안을 다시 검토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데 어느 정도 시일이 소요됐겠지만 8개월이라는 기간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또 하나, 기술적으로 UCI와 COI를 과연 단일 체계로 만들 수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서는 기술적 관점과 산업적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다른만큼 논란의 소지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UCI와 COI는 구조적으로 모두 접두 부문과 접미 부문으로 구성돼 있어 구문 구조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UCI는 콘텐츠의 흐름에 관한 정보를, COI는 저작권에 관한 정보를 중시하는 등 정보의 종류와 기술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이번 조정에서 양측은 시스템 간 연동을 위해 COI에 UCI가 규정하고 있는 기본적인 사항을 담기로 했다. 이 말대로라면 저작권 정보 중심의 COI에 유통 정보가 보강된다는 뜻이다. 이 정도라면 식별체계에 담길 정보뿐 아니라 식별체계의 구조까지도 통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무조정실의 이번 조정은 그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여전히 불씨를 남겨놓은 어정쩡한 타협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조정으로 콘텐츠 식별체계가 시장에서 판가름날 기회도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국무조정실로부터 각각의 대표성과 독립성을 인정받은 이상 문화부와 정통부가 관련 업계의 자율적 선택에만 맡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콘텐츠의 주관 정책부처로서의 위상과 관련돼 있다. 대부분 영세하거나 중소규모인 사업자들이 지원과 육성을 책임지고 있는 해당 부처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UCI든 COI든 식별체계는 콘텐츠의 생산에서 소비까지 이르는 전 과정과 관련된 주요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구성하는 게 목적인만큼 업체나 업종에 따라 선호도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건전한 산업 발전을 위해 서로 다른 식별체계로 인한 중복과 추가 비용부담이 시장의 요구에 따른 자율적 선택이냐 아니냐는 매우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시간을 끌다 갈등을 줄이는 현실적인 타협에 그친 듯한 국무조정실의 조정력은 실망스럽다. 수 년 전부터 거세게 불고 있는 디지털 컨버전스로 인해 정부 부처 간 관할권 다툼이나 정책 중복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국무조정실의 조정 역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조정 결과를 놓고 벌써부터 부처 간 실무 협의과정에서 주도권 다툼이 재연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 산업계가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무조정실은 앞으로 쟁점사항에 대해 부처 의견보다는 기술과 산업,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어느 것이 유리할지에 따라 확실하게 조정력을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