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학교육 혁신 미룰일 아니다

 미래 성장동력을 견인할 창의적 기술인력을 양성해야 할 우리나라 공과대학이 특성 없는 백화점식 학과 운영과 이론 위주의 경직적인 교육시스템으로 산업계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더욱이 정부의 교육정책에 문제가 있고, 산학협력·공학교육인증제도 등도 당사자 간 인식 차가 있는 만큼 공학교육 전반에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산업자원부의 의뢰를 받아 최근 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와 삼성경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전국 70개 공과대학 교수 1307명, 학생 20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학교육 혁신 설문조사’ 결과도 이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대학 현장의 두 주체라 할 수 있는 교수와 학생이 대학 공학교육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에 대한 시각은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정부의 교육정책은 물론이고 그나마 기대를 모았던 공학교육인증제도나 산학협력단에 대한 기여도 또는 만족도 조사에서도 모두 보통도 안 된다는 평가를 내렸다. 우리 대학 공학교육이 얼마나 부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지표라고 봐야 한다. 공학교육을 지원하는 대학 자체의 행정서비스마저 보통 이하인 부정적 평가가 내려졌다.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대학 현장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여느 설문조사와 같이 취급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대학 간판만 놔두고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도 그리 과한 지적은 아닌 듯하다. 우선 대학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지만 정부 당국도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 정책이 공학교육에 기여하는 정도를 묻는 질문에 만족도가 보통(3) 수준에도 크게 못 미치는 2.37로 낮은 점만 봐도 그렇다. 정부의 재정 지원 대상 선정 평가지표 적절성도 2.65로 낮게 평가해 현장과 괴리가 있음을 보여줬다. 평가지표가 대학이나 학과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데다 과거 실적 위주로 이루어지도록 돼 있는 점 때문이라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주목되는 것은 향후 교육 방식 개선과 관련해 교수와 학생들이 특정산업 맞춤형 교육 비중을 높여 달라고 주문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편으로 교수와 학생은 산업계 요구에 맞출 의지와 욕구가 있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가 있으면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물론 최근 대학과 기업이 산학협동 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학에서 얻은 지식과 기술의 산업현장 부합도는 높아지는 추세지만 아직도 기대치를 크게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도 뒤에서 대학교육에 대해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문하고 쓴소리도 해야 한다. 대학에서 배출한 인재를 받아서 쓴다는 소극적인 자세로는 날로 심해지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공학교육을 비롯한 대학 혁신은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다. 세계 경제가 통합되는 지구촌 시대에 대학이 혁신하지 않고서는 국제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명문대학과 경쟁하는 초일류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이 탈바꿈해야 한다. 수요자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개편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만큼 미룰 일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 우리 대학들의 혁신이 지지부진한 것은 정부의 재정 지원만 바라보는 ‘외부 의존형’ 개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이 열악하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기존 틀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 특성화와 구조개혁을 위해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외부의 평가를 받아본 대학이 극소수라는 사실이 그 예다. 이번 교수와 학생들의 평가가 그 나름대로 대학별 특성화 등 대학 구조개혁의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도 이런 점에 정책적인 배려를 한다면 공대 교육의 혁신은 그만큼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