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닌 모양이다. 지난주 외신을 타고 들어온 ‘일본이 이공계 인재 양성에 발벗고 나선다’는 보도가 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이공계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기사는 일본 정부와 기업이 이공계에 대한 어린이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다각도로 지원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의 대책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내년부터 전국 공립 초등학교 5·6학년생의 이과(理科) 과목의 실험·관찰 수업에 정규 교원을 보조하는 ‘이과 보조원’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퇴직한 연구원이나 기술자·대학원생 가운데 보조원을 선발해 이들로 하여금 학생의 실험지도는 물론이고 경험담이나 과학기술의 활용도를 전하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학생들에게 이과를 좋아하도록 하고, 또 그런 아이들을 키우겠다는 뜻이다. 내년 예산만도 60억엔, 약 492억원을 배정해놨다고 외신은 전했다. 얼마나 의욕적인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이 오죽했으면 이런 대책을 내놓았을까 싶다.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학 수험생의 의학부 선호 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최근 발표한 ‘학교 기본 조사 보고서’를 보면 대학 입시에서 도쿄대나 교토대 같은 명문대 이공계열에 지원하기보다는 의학부를 고집하는 수험생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도 우리와 비슷하다.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는다는 인식이 수험생 사이에 팽배하기 때문이다. “일생 먹고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의사 면허는 연령 제한도 없고 갱신하지 않아도 되는 등 장점이 너무 많다”는 어느 일본 수험생의 신문 인터뷰 내용이 이를 잘 말해준다. 마치 우리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보는 듯하다.
이공계 전반은 아니나 미국에서도 컴퓨터공학과 과학 분야의 기피 현상이 심각해진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학에서 컴퓨터 전공자가 급격히 줄고 졸업생이 실리콘밸리 대신 월가의 금융회사를 기웃거리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한다. IT 버블이 꺼진 뒤 인기가 뚝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한때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미국 동부지역 몇몇 대학을 돌며 ‘공학도의 희망’이라는 주제로 특강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공계가 기피 대상이 된 것은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하지만 이공계 인재 양성의 중요성은 10년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고 최근에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화두다.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이공계 육성 대책만 해도 엄청나다. 이공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정부·공기업은 일정 비율 이상 직원을 이공계로 충당토록 의무화한 것 등 다양하다. 정책 수단은 대부분 ‘돈’이다.
이공계 살리는 것은 시대적 당위지만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평면적, 단기적이다. 저변확대를 꾀하는 일본과는 차이가 있다. 돈 몇푼으로 유혹하고 정부지침으로 단기 채용을 권장한다 해서 이미 등돌린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이 돌아올 수 있을까. 우수한 과학고 학생이 의대로 몰리고 대학·대학원생조차 자퇴해가며 고시공부나 의대·한의대 편입학에 몰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고급 인력을 균형 있게 배치하자면 더욱 멀리 보는 안목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는 어릴 때부터 기초 과학·공학 학문의 가치를 심어주는 것이다. 또 현재의 잣대로만 재단할 수 없는 이공계 직업의 장래성과 가능성도 제시해줘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눈앞의 당근이 아니라 이공계의 미래 보장이다. 일본의 이공계 대책이 관심을 끄는 이유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