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지상파DMB `선발사 후표준` 대가](https://img.etnews.com/photonews/0609/060915114638b.jpg)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미래의 부를 결정짓는 3가지 축을 제시했다. 시간축·공간축·지식축이 그것이다. ‘빨리 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시간축은 매우 유용한 경쟁수단이며 어찌 보면 우리보다 시간(속도)을 잘 다루는 민족도 없을 성싶다. 한강의 기적도 따지고 보면 시간을 축으로 압축성장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세상에는 시간축으로 성공할 수 없는 일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부가 차세대 먹을거리라고 추진한 지상파DMB가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채 많은 혼선과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부는 DMB를 하루라도 빨리 세계에 보여주려고 조급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반드시 짚어야 할 내용과 과정을 생략한 채 ‘세계 최초’란 명분에만 급급해 ‘전파나 먼저 쏘고 보자’라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지상파DMB를 추진하면서 다음의 3가지 트랙을 반드시 짚어 보고 트랙 간 유기적 협조관계를 구축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첫 번째가 표준화 트랙이다. 송출·암호화(CAS)·데이터방송 등의 국가표준을 만들고 확정했어야 했는데 이를 간과했다. 벌써 시장엔 170여만대의 단말기가 깔려 있다는데 표준이 없으니 이 모두가 비표준인 셈이다. 비표준에 불완전한 양방향 데이터방송규격(BiFS) 신호를 내보내니 단말기는 오작동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보급된 단말기가 모두 오작동한다면 소비자 피해의 규모는 간단히 3000억원을 넘어선다. ‘선(先)발사, 후(後)표준’의 대가가 혹독하다.
두 번째는 단말기 트랙이다. 표준화 과정에서 확정된 규격을 받아 표준 단말기 사양을 만들고 이에 필요한 부품을 생산·조립해 시험과 검증절차를 밟아 출시해야 한다. 그런데도 절차가 생략된 채 단말기가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 표준도 없고 인증 방법도, 절차도, 인증 주체도 없다.
세 번째가 방송 및 콘텐츠 트랙이다. 방송사업자는 광고·데이터·교통정보·부가서비스로 구성된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야 한다. 시청자를 위해 난시청 음영지역 해소와 중계망 확충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데 첫 전파발사 전까지 얼마나 투자를 했는가. 보편적 무료서비스를 표방한만큼 광고주를 끌어들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데이터방송 유료화를 통해 부가수익을 올려야 하는데 BIFS·BWS의 한계를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가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기에 DMB산업 전체의 생태계에 대한 통찰도 부족했던 듯싶다. DMB가 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처음부터 이해당사자 간 조정을 통해 연착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줘야 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DMB산업 생태계를 가치사슬의 측면에서 보면 방송 및 콘텐츠그룹의 기여도가 제일 큰 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익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단말기 제조그룹이 재미를 보고 있다. 생태계 내 기여도와 이익분배 구조가 일치하지 않거나 심하게 왜곡된다면 이는 결코 건강한 구조가 아니다. 서로 갈등하다가 결국 생태계 전체가 피폐해지고 말 것이다.
지상파DMB 사업자들도 서로를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지상파의 경쟁매체는 분명 위성이며 6개 지상파DMB 사업자는 동일 플랫폼에서 상호보완 기능을 갖는 동업자인데 어쩐지 소모적 경쟁만 하고 있다. TPEG에서의 경쟁이 그러하고 BIFS와 BWS의 한계를 알면서도 무반응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이런 혼란을 방치할 수는 없다. 빨리 대책을 강구해서 DMB산업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한편 종주국으로서의 구겨진 체면도 살려 수출산업으로, 차세대 먹을거리로 자리매김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DMB 표준화(미들웨어·암호화 등)를 빨리 끝내고 단말기 인증 제도를 실시해 시장혼란과 소비자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둘째, 미들웨어 기반의 데이터방송을 실시하고 이를 유료화해 장기적 수익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DMB가 양질의 데이터 서비스를 통해 부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선 미들웨어 도입이 필수적이다. 셋째, 난시청 음영지역 해소를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끝으로 이해 당사자들이 DMB산업 전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선순환 구조를 짜야한다. 산업내 가치사슬에 맞는 이익분배가 되도록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
◇지승림 알티캐스트 사장 jeesl@altica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