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엑슨 플로리오법

 한 나라 산업의 토대가 되는 게 기간산업이다. 철강·석유·기계·비료·교통·원료 그리고 전력과 통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기간산업이 무너지면 그 나라에 안보 위기가 온다는 게 세계 각국의 정서다. 기간산업이 한때 독점 자본의 지배대상이 되거나 국영기업의 형태를 띠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강력한 내부 통제는 물론이거니와 외국자본의 침투로부터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 필요했던 것이다.

 오늘날 각국은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침투를 법으로 방어하고 있다. 영국은 산업법과 공정무역법 등을 통해 정부가 외국자본의 투자철회를 요구할 수 있다. 프랑스 법도 철강과 에너지 등 11개 기간산업에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돼 있다. 자국의 기간산업 보호를 직접 겨냥한 대표적인 법은 뭐니 뭐니 해도 미국의 국가안보심사법, 일명 ‘엑슨 플로리오법’이다.

 지난 88년 상원의원 엑슨(Exon)과 하원의원 플로리오(Florio)가 발의한 이 법은 안보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외국인 투자를 정부가 직접 조사하고 철회를 요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실제 이 법은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를 대통령이 금지할 수 있는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엑슨 플로리오법을 도입한 이후 25건의 자국 기간산업 M&A를 조사하고 이 가운데 14건을 자진 무산시키거나 강제 철회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예컨대 홍콩의 허치슨 왐포아는 광통신망 업체 글로벌크로싱 인수계획을 스스로 포기했다. 외국기업이 통신망을 소유하면 정보도청이 쉬워질 수 있다는 엑슨 플로리오법의 유추해석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중국 국영기업이 우주산업부품 전문업체 맴코를 두고 시도했던 M&A는 레이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무산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자국 기간산업 보호에는 철두철미한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의 기간산업 보호정책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 측이 한국 정부가 통신사업자에 적용하고 있는 외국인 지분제한(49%)을 완화(51%)하거나 아예 철폐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게 그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한국판 엑슨 플로리오법을 제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서현진·IT산업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