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새 국내 미디어산업의 최강자로 부상한 태광그룹이 최근 ‘은둔의 왕국’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디어그룹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험대에 올라섰다. 태광그룹의 이번 미디어산업 내 자리매김은 향후 2∼10년간 미디어그룹으로 상호 경쟁할 SK그룹·KT그룹·CJ그룹·롯데그룹·오리온그룹·SBS그룹 등에 최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태광그룹, ‘9년 만에 최대 MSO’=태광그룹이 미디어산업에 뛰어든 시점은 지난 97년 7월 안양방송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현재처럼 미디어를 전략적으로 육성한 계기는 2003년 10월 복수종합유선방송사(MSO)인 한빛방송(옛 한빛아이앤비) 인수에 성공하면서다. 이후 태광그룹은 SO 인수합병 최대 주체로서 현재 14개 구역, 19개 SO(가입자 290만∼300만가구)를 보유한 최대 MSO로 자리매김했다. 미디어산업의 3대 축인 SO·방송채널사용사업자(PP)·홈쇼핑채널을 한손에 쥔 셈이다.
그러나 태광그룹과 대비되는 CJ그룹은 한 수 위였다. CJ그룹은 SO 분야에서는 200만가구로 열세지만 PP에서는 CJ미디어가, 홈쇼핑분야에서는 CJ홈쇼핑이 버틴다. 맞선 태광의 선택은 PP의 전략적 활용과 홈쇼핑 시장 진출이다. 태광은 이채널·티브로드폭스코리아 2개 PP를 보유중이다. 하지만 태광은 직접 MPP로 나서기보다 ‘적과의 동침’을 택했다. 올 초 CJ미디어의 제3자배정방식 유상증자에 전주반도유선방송(태광그룹 계열사)을 참여시켜 12%를 확보했다. 또 2위 MSO인 씨앤앰커뮤니케이션이 인수한 시리즈TV에도 25% 지분 참여했다.
◇‘홈쇼핑, 주력 사업자 청사진’=태광그룹 내부에서는 중기 미디어 전략으로 우리홈쇼핑을 주력사업자로 내세운 그림을 그려왔다. 앞에는 우리홈쇼핑이 서고 뒤에서 MSO가 지탱하는 전략이다. PP는 다른 미디어그룹 간 세력 균형의 위치에서 활용한다는 것.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우리홈쇼핑의 1대 주주인 아이즈비전의 지분 19%를 약 900억원에 전격 인수했다. 이후 지분율을 46%로 높였다.
태광이 우리홈쇼핑 인수에 성공하면 ‘티브로드-우리홈쇼핑’ ‘CJ케이블넷-CJ홈쇼핑’ ‘HCN-현대홈쇼핑’ 3강 체제가 자리잡힌다. 티브로드는 태광MSO의 위탁운영업체고 HCN은 현대백화점계열 MSO다. 이 같은 MSO-홈쇼핑 연대진영은 향후 콘텐츠까지 포괄하는 거대 미디어 시장 재편의 전단계로 여겨졌다.
◇미디어그룹, 시험대 올라=승승장구하던 태광그룹은 지난달 롯데그룹이라는 변수와 부딪쳤다. 롯데그룹이 경방과 그 우호세력이 보유한 우리홈쇼핑의 지분 53%를 인수키로 한 것.
태광그룹의 미디어전략은 이제 방송위원회의 손에 달려 있다. 방송위가 ‘우리홈쇼핑의 최다 주주 변경(경방→롯데)’을 인정하게 되면 태광은 전략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태광의 관계자는 “경방 측이 2004년 재승인을 받으며 주식을 처분하지 않기로 서약했는데 이를 어겼다”며 “롯데쇼핑은 2001년 홈쇼핑사업자 선정 시 부적격 사업자로 탈락했는데 이번에 우회 진입을 허용하면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수는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정체다. 태광MSO는 지난해 56% 성장을 기록하는 등 지난 3년간 초고속인터넷에서 폭발적으로 성장, 캐시카우로 삼았다. 그러나 지난 7월 전월 대비 첫 순감을 기록했다. 태광MSO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앞으로도 증가는 하겠지만 고속 성장의 시대는 끝난 셈이다. 예상보다 일찍 초고속인터넷 정체기를 맞은 반면에 케이블TV의 수신료 증가세는 더딘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태광은 올해 말까지 장기적인 미디어그룹 전략을 짜야 할 상황”이라며 “태광그룹의 행보에 따라 미디어 시장 진입을 노리는 다른 대기업의 전략도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