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과 통신·방송융합 논의가 본격화된 가운데 정작 콘텐츠를 담당할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이 고민에 빠졌다. 한때는 디지털 전환과 통·방융합 현상이 ‘콘텐츠의 원소스 멀티유스’와 ‘매체 다양화’를 가져와 PP들의 입지 강화가 예상됐지만 최근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PP는 통·방융합 논의와 디지털 전환 정책 과정에서 소외돼 지상파나 종합유선방송사(SO) 등 플랫폼 사업자들에 종속되는 형국이다.
PP업계 한 관계자는 “온미디어나 CJ미디어 등 복수PP(MPP) 정도가 시대 흐름에 능동적으로 따라가지만 나머지 대다수는 오히려 위기 의식이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PP업계는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산하 PP협의회를 통해 조만간 대안을 낼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PP는 디지털 전환과 통·방융합의 선두주자?=PP의 가치는 디지털시대 도래와 통·방융합으로 상한가를 칠 것으로 전망됐다. KT 등 통신사업자가 IPTV 시장 진입 시 사업 성패를 좌우할 콘텐츠를 쥔 게 PP이기 때문이다. 통·방융합시대는 플랫폼 다양화로 이어져 지상파·SO·위성방송 등 기존 매체와 더불어 위성DMB·지상파DMB 등 신규 매체가 진입을 마쳤다. 내년께 IPTV 상용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와이브로와 HSDPA 등 새 통신서비스도 방송콘텐츠를 제공하는 매체로 발전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최근 국내 1·2위 MPP인 온미디어와 CJ미디어가 연내 4개 채널의 HD 전환을 발표했다. 온미디어의 스토리온·OCN·수퍼액션·캐치온, CJ미디어의 tvN·채널CGV·XTM·올리브네트워크는 올해 전체 편성 중 15% 정도를 HD콘텐츠로 하며 내년엔 35%, 2008년 50%로 늘려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나머지 중소 MPP나 단일 PP들은 HD 전환을 위한 투자에도 허덕이는 현실이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의 권오영 박사는 “통·방융합 및 디지털 전환 정책에서 PP가 소외되고 있는데도 SO 등과의 관계를 우려해 정책 반영을 위한 주장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위기의 PP업계=통·방융합 정책의 사업자분류체계 논의에서도 PP의 존재는 없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의 정하웅 국장은 “지상파를 비롯해 230개 PP, 데이터방송채널사용사업자(DP), 콘텐츠제공자(CP), 향후 등장할 IPTV용 PP 등에 대한 분류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분류체계가 명확하지 않아 방송이나 광고 심의 규제도 천편일률적인 적용을 받고 있다는 것.
또 지상파 다채널방송(MMS)의 진입도 거론중이다. 지상파 채널수가 현재의 2배만 돼도 PP 광고시장이 붕괴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SO와 PP 간 왜곡된 관계에서 나온 ‘저가의 PP수신료’ 구조도 악재다.
심지어 정부의 방송장비 감면제도 대상도 오히려 자금력을 가진 지상파로만 한정돼 있다. 권오영 박사는 “정통부는 디지털TV나 셋톱박스등 기기 판매를 위한 디지털 전환을 고려하는데 PP는 소외됐다”고 지적했다. 중소 PP들은 이런 상황인데도 변변한 정책건의서조차 못내왔다. 중소 PP로선 앞에 나설 경우 오히려 SO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다. 이대로라면 디지털 전환과 통·방융합에 따라 일부 MPP는 더욱 성장하는 반면에 기반이 되는 중소 PP는 몰락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PP협의회는 이 같은 현실을 타개키 위해 지난 5월 ‘PP 방통융합연구전담팀(위원장 정윤희 대교방송 사장)’을 구성하고 대안 마련에 고심해왔다. 전담팀이 내놓을 방안은 PP협의회 이사회를 거쳐 공식 의견으로 정부 등에 건의될 예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 등 국가 정책에 대해 PP들이 한 목소리로 의견을 개진하는 사례”라며 “현재의 왜곡된 논의 구조를 풀어내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