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시속 100마일과 1마일의 충돌](https://img.etnews.com/photonews/0610/061011012914b.jpg)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시간의 문제를 가장 중요한 화두로 던졌다.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변하는데 NGO는 90마일, 노동조합은 30마일, 정부와 관료조직은 25마일, 공교육은 10마일, 국제기구 5마일, 정치조직 3마일, 법과 그와 관련된 기관이 1마일로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날 지식기반 시스템의 위기는 가장 중요한 시간을 잘못 다뤄 생겨난 문제라고 말했다. 개인과 기업, 사회, 국가 모두가 변화와 혁신을 위해 전력투구해야만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통신·방송융합 문제 역시 이와 유사하다. 100마일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 국내 IT시장과 1마일로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 법과 제도의 불합치 문제다.
특히 IPTV는 통·방융합서비스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서비스다. 영국에서는 이미 VoD를 중심으로 2001년에 서비스가 시작됐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국·대만·동남아 등 우리보다 정보화 인프라가 낙후돼 있는 곳에서도 이미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2005년 말 기준으로 210개 이상의 사업자가 상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 정도다.
국내 주요 통신사업자도 통·방융합서비스로 IPTV를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나, 법·제도상의 제약으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IPTV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IPTV는 기존의 통신과 방송이 융합돼 등장하게 된 새로운 서비스’라는 시각과 ‘IPTV는 전달망에 있어서만 변화가 있을 뿐 이용자 또는 서비스 구현방식 등에서 기존의 종합유선방송과 동일한 서비스’라는 시각이 대립하고 있다.
또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통신과 방송의 단순한 결합이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환경이 조성돼 있지 못하다.
늦은 감은 있지만 국내에서도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 공동으로 IPTV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함에 따라 2007년 이후에는 본격적인 상용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또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방통 정책 및 규제체계 정비 등 그동안 걸림돌로 작용해왔던 문제들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그동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던 통신·방송융합서비스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향후 통신·방송융합서비스가 ‘디지털 기반의 경제회생 정책’의 실질적 성과를 조기에 유발할 수 있는 분야가 되기 위해서는 아래 세 가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것이다.
첫째, 융합시대의 성공적 열쇠는 빠르게 변하는 기술을 다양한 소비자 욕구에 부합한 서비스로 개발함으로써 산업화의 회임기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어떤 기술을 합쳐 어떠한 서비스를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창조적인 능력과 기술변화의 속도가 빠른만큼 이러한 서비스의 개발시기와 상용화시기, 시장에서의 소비자 수용가능성 등은 융합서비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다.
둘째, 새로운 융합 패러다임에 맞춘 규제체계의 혁신이 필요하다. 현재 규제에 관한 경직된 사고방식, 통신과 방송으로 양분된 규제 구조, 관련 업계의 이해 대립 등 국내 여건을 고려하면 새로운 융합 패러다임에 맞는 규제 시스템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융합서비스의 국내 경제 파급효과가 상당히 클 것으로 예견되는만큼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창조적 파괴’에 가까운 규제체계의 변화가 따라야 할 것이다.
셋째, 지금까지 새로운 서비스 개발은 기술에 의한 공급자 관점에서 주도돼 왔으나, 향후 융합서비스의 개발은 소비자 요구를 반영하는 단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비자의 수요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수요 견인적 관점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변화의 속도가 중요하다. 개인과 기업, 사회, 국가가 변화와 혁신을 위해 열정을 쏟는만큼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기간도 짧아질 것이다.
임주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chyim@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