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체 거래처 잘못 만나면 `쪽박`

 볼프강 지바르트 인피니온 최고경영자(CEO)는 요즘 앉은자리가 바늘방석 같다. 올해 8000만유로, 내년에 1억5000만 유로의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며 당분간 적자 탈출이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그는 흑자반전을 장담했었다. 지난해 벤큐지멘스와 체결한 휴대폰 반도체 공급협상의 결과가 올해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벤큐가 인수한 지멘스 휴대폰 사업은 부실덩어리였고 결국 지난달 독일 휴대폰 사업에서 손을 뗐다.

지바르트 CEO에게 벤큐 지멘스는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IT업체들이 거래처를 잘못 만나 줄줄이 낭패를 겪고 있다.

모든 상거래에서 중요한 거래처의 성패가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근 IT업계에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치르면서 대형 IT 기업 위주로 재편됐으며 이들이 수요공급체계를 장악했다. 당연히 거래선은 소수의 대기업으로 적어졌으며 ‘리스크’의 양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업간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거래처 한 곳의 위기가 업계 전체로 광속으로 확산되는 도미노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소니 배터리 리콜 사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소니의 배터리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은 세계 PC업계에 줄줄이 파장을 미쳤다. 가장 타격을 입은 회사는 최대 PC제조사인 델이다. 델 노트북PC의 잇따른 폭발사고 이후 판매가 급감하면서 지난 분기 최악의 실적을 예고했다.

배터리 파문은 PC 업계를 넘어 반도체업계로 확산됐다.

델이 위기 탈출을 위해 AMD와 더욱 가까워지면서 인텔의 위상을 흔들었다. 델은 배터리 리콜사태 이후 AMD칩을 채택한 PC와 서버 생산량을 더욱 늘렸다. 결과적으로 인텔은 소니 배터리 사태의 유탄을 맞은 셈이다.

누군가 손해를 보면 이득을 보는 쪽도 있는 법이다. AMD는 델을 새 거래처로 확보해 지난 3분기 순익이 77%, 매출도 32% 늘었다고 발표했다. 또 HP는 지난 2004년에 AMD와 거래를 트면서 옵테론칩을 채용한 것이 주효해 지난 3분기 델을 제치고 세계 PC시장 1위 자리로 올라섰다.

지난 몇년간 IT업계에 인수합병(M&A)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수요처와 공급처의 숫자는 동시에 줄고 있다. 글로벌 IT업체 상호간의 독점적 거래에 따른 리스크부담도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기업경영에서 다양한 거래처를 확보하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충고한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