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마이크로 크레디트와 중기 정책자금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 1월 ‘재정자금을 이용한 중소기업 정책금융의 수익성 개선 효과’라는 논문에서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서울대 한국행정연구소는 최근 내놓은 ‘중소기업정책자금 성과분석 및 역할재정립’ 연구보고서에서 정책자금을 지원받은 중소기업이 수익성과 매출액에서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며 상반된 주장을 했다.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에서는 동일한 주제를 놓고도 연구결과가 얼마든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게 상식이다. 한국행정연구소 관계자도 이번 연구결과가 KDI의 논문내용과 큰 차이를 보인 것에 대해 “정확히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비교집단을 어느 곳으로 잡았느냐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자세다. 정부는 정책 결정과정에서 평가나 연구결과가 연구 주체나 접근 방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기획예산처는 KDI의 연구결과에 전적인 신뢰를 보냈고 이후 벌어진 관련 토론회에서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난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지난 5월 관계기관 회의에서 기획예산처는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전면 축소하자는 주장에서 한 발 물러나 3% 정도의 소폭 축소로 선회했다. 중소업계의 반발과 청와대의 반대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정책 결정과정에서 기획처와 KDI의 주장대로 중소기업 정책자금이 대폭 축소됐다면 이번 한국행정연구소의 상반된 연구보고서로 우리사회는 또한번 큰 혼란에 빠질 뻔했다.

 지금 와서 서로 상반된 연구보고서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그보다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중소기업 정책자금에 대한 커다란 시각의 편차를 지금부터라도 조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KDI와 기획예산처를 중심으로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분명 일리가 있다. ‘정책자금에 기대려는 중소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비금융기관에 의한 정책자금 운용에 따른 비효율성’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KDI와 기획예산처는 정책자금의 긍정적 측면을 중시하는 또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정책자금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이 기능의 많은 부분을 제도금융권으로 해소하려는 정책의 타당성도 재점검해봐야 한다.

 얼마 전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마이크로 크레딧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마이크로 크레딧이란 담보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액을 무담보로 신용대출해 주는 금융기법을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우리나라에서 마이크로 크레딧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휴면예금 활용 등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은 이와 관련해 “마이크로 크레딧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제도금융과 마이크로 크레딧 방식이 보완적으로 유지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 비서관의 이 발언은 무담보 무대출 관행과 담보물건제한 등 제도금융권의 현실을 고려한 때문이다.

 중소기업 정책자금은 산업금융 분야의 마이크로 크레딧이라 할 수 있다. 산업금융을 담당하는 국책은행들이 대규모 정책자금을 운용하고 있지만 제도금융권이라는 한계 때문에 담보나 신용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중소기업은 혜택을 누리지 못해 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소기업 정책자금이라는 제도가 생겨났다. 기획예산처와 KDI의 방식대로라면 산업금융 분야 제도권에 우선 마이크로 크레딧 기능을 활성화하는 게 순서다. 그렇지 않다면 사금융 분야와 마찬가지로 제도금융권과 상호 보완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최근 무용론이 제기될 정도로 국책은행들이 산업금융보다는 프라이빗 뱅킹에 주력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