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정책을 주관하는 정보통신부는 IT839 전략을 중심으로 신성장동력산업 육성에 진력하고 있다. 이들 산업이 성공적으로 육성된다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대로 도약할 수 있는 확실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선 집중적인 연구개발(R&D) 예산 지원과 산업체가 사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 사업을 추진해 나갈 핵심 고급인력이 충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정통부는 대학IT연구센터(ITRC)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고급 인력양성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ITRC사업의 목적은 석·박사급 고급인력이 모여 있는 대학의 IT 분야 연구역량을 강화해 신성장동력산업 발전에 필요한 핵심 기반기술을 전략적으로 연구하고, 관련 전문인력을 집중 양성하고자 함이다.
정부는 이 사업을 통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전국 32개 대학 61개 센터에 1700여억원을 지원해 2005년까지 4000여명의 석·박사를 배출하고, 과학기술논문색인(SCI)급 논문 4061편, 기술이전 250건, 국제특허 370건, 국내특허 1600여건 등의 실적을 거뒀다. 더욱이 2003년부터는 지원금을 2배(연간 8억원씩 8년간 지원) 가깝게 증액하고 있어 앞으로 그 성과가 더욱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은 대학이 이렇게 질 좋은 석·박사 인력을 과거에 비해 많이 배출해도 수요자인 산업체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산업계에 필요한 인력과 대학이 양성하고자 하는 창의력 있는 R&D 전문인력에 대해서는 견해상의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산업계는 입사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해 주길 바라고 있는 데 비해 대학은 기술의 변화가 극히 빠르고 유동적인 현실에서 기술의 흐름이 어느 쪽으로 바뀌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전방위 대응가능형 인재를 배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 결과 산업계로부터 함량미달의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기업이 원하는, 이른바 맞춤식 교육을 받은 특정 분야 전문인력을 배출하다가 시장 상황이 돌변해 그 분야 인력이 불필요하게 될 때의 문제를 학교에서는 고려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대학도 현장감 있는 인력 배출을 위해 실습의 양과 질을 높이도록 커리큘럼을 개편하고 필요 교육장비 도입과 환경 구축에 집중하도록 변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이 기업에서 원하는 석·박사 인력을 세계 초일류 수준으로 배출하고 있다고 강변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정통부를 비롯한 관련 정부부처들의 집중적인 지원에 힘입어 상당 수준 향상됐음을 자타가 인정해 주리라 믿는다. 일례로 SCI급 논문 게재 수의 대폭 증가를 들 수 있다. SCI급 논문에 대해 일부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논문지는 학회 회원 중 당해 분야에서 선발된 세계적인 전문가 3∼4인이 제출 논문을 심사해 학문적 가치가 인정될 때에만 통과시켜 게재하는 시스템으로 운용되고 있다. SCI급 논문이 몇 편이면 박사학위 취득 조건이 된다고 하는 요즘의 대학 박사과정 심사체계는, 쉽게 말해 전혀 모르는 어느 나라의 최고 전문가가 심사위원이 되어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실이 개입할 수 없고, 논문의 질도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가 그 실용성을 인정해 논문지 게재를 허락한 것이니 신뢰할 만하다. 그만큼 SCI급 논문 게재를 의무화하고 있는 대학이 수여하는 박사학위는 최고는 아니더라도 세계 수준급이라고 평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최근 국가 균형발전과 지역분배 개념에 의한 지방대학 육성발전 계획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본다. 그런 점에서 50개 ITRC가 전국의 대학 중에서 선정된 것은 좋은 예다. 열악한 국내 대학의 교육 환경은 시급히 개선돼야 하지만 하향 평준화를 만드는 분배정책은 곤란하다. 외국의 대학 예산에 비해 액수가 상당히 적은 우리의 현실에서 나눠먹기 식 지원정책은 세계와의 격차를 더욱 벌려 놓을 뿐이기 때문이다. 2882개 미국 대학 중 연구중심대학은 3%인 89개, 캐나다는 500만달러 이상의 정부지원금을 받는 대학이 19개,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육성시킬 대학을 전체 1222개 중 30개로 선정했다는 어느 조사통계를 보면서,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것에서만큼은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곱씹게 한다.
◆강철희(고려대 전자공학과 교수·ITRC협의회장) chkang@korea.ac.kr